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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 20-18장 15절
200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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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창세기 17장 20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다시 한번
더 아브라함에게 상기시키고 계심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19절에서 하나님의 언약은 사라가 낳
을 아들 이삭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깨닫지 못하여 믿
지 못한 인간의 육신적인 생각대로 그리고 하나님께 부탁한 대로 이스마엘을 축복하겠다는 말씀을 하십니
다. 18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스마엘에 대한 바로 그 아브라함의 말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음을 20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실 때 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첩을 통하여 낳은 이스마엘을 의미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하여 낳을 아들이라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웃었
습니다. 여기서 웃었다는 영어로 laughed로써 비웃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엎드림으로 하나님의 권위
에 따르기는 하는 모양새는 나타내 보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그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나님의
그 말씀을 비웃으며 속으로 ‘100세된 사람이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 어찌 생산하리요’라고 생각하
였습니다. 그 가운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께서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다시 말씀 하셨습니다. 게다가
그 이름은 이삭이라 하라고 구체적으로 그 아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아들 이삭과
내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그 언약을 영원히 그 대대후손에게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 후에 오늘의 본문 시작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첩 아갈의 아들 이스마엘에 대하여 언급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20절에서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
기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말을 들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가를 그 구절을 통
하여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소리를 들으셨
듯이 우리들의 소리도 들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드린 소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요구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드린 바로 그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는 말은 육신적인 말이요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말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쓸
데없고 틀린 말을 하나님 앞에 아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의 말을 들으신 것이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르고 옳은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틀리고 쓸데없는 말도 들으시기도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뢴 말은 육신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스마엘
은 성경에서 육체를 나타내는 인물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22절부터 23절은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
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마엘은 사라의 여
종 하강에게서 낳아졌고, 이삭은 자유하는 사라로부터 낳은 아들로 인식되어집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 계집 종이나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두 아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
다. 계집 종에게서 난 아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로써, 그리고 자유하는 여자 곧 사라에게서 태어
난 아들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난 자로써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마엘은 육체를 의미하고
이삭은 약석을 드러냅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이스마엘은 이로 볼 때, 육체를 나타냄
이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이 육체의 욕심과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갈과 동침하여 낳은 이스마엘을 위하여 하
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 낳은 아들 곧 육체를 위하여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를 위한 기도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우리의 육체를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
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지 아니한 육체적인 필요도 충족시켜
주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곧 육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한다’라는 말은 영어
로 'add'입니다. 이 add는 더하여준다 곧 여분으로 주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먹고 입어야 하는 육체의
필요를 기도를 통하여 구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들도 그리고 들판의
백합화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가장 기뻐하셨
던 사람의 육체의 필요를 채우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종교적이고 육체적인 기도보다는 하나
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그러한 육체적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의 육체를 위하여 그리고 육체의 필요를 위하여 기도하곤 합
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곧 육체적인 기도도 들으셨듯이 우리들의 육체적인 기도도 들으시고
종종 그 기도를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대단히 인자하십니다. 예수님의 말
씀과 같이 우리가 분명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보다 우리
의 육체를 위하여 먼저 구하곤 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필요도 들으시고 채워주시곤 하십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도 돌보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육체의 기도에 따라 이스마엘에게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마엘이 많은 자녀들을 낳
고, 그 나은 자녀들이 심히 많은 자녀들을 낳는 과정들을 거쳐 열두 방백 곧 치리자들을 낳고 그의 나라가
큰 나라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를 상징하는 이스마엘이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
을 하시고서, 하나님께서 다시 이삭에 대하여 언급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 21절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구체적으로 약속의 아
들 이삭에 대하여 세 번째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육체적인 기도를 들으주시기는
하시지만, 약속은 약속의 자식과 세운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
식시켜주십니다. 육체의 필요에 대한 응답은 하시지만. 그 육체를 위한 응답은 사실 하나님의 깊은 관심사
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나 그 육체의 필요를 무시하시지는 않으시지만, 그러한 것들은 하나
님 앞에 재차 언급될 정도의 것들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말을 좇아 이스마엘을 축복하시기는
하지만, 하나님깨서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더 나은, 더 귀한 것은 이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0절 마
지막 부분과 21절 시작 부분의 말씀에 유의해 보십시오. 20절 마지막 부분에 ‘내가 그로 곧 이스마엘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라고 우릿말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되게 하려니와’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고서 흠정역성경의 21절 서두를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흠정역 성경 창세기 17장 21절 첫 부분에
‘but'이라는 접속사가 사용되었음을 깊이 숙고해 보십시오. 20절과 21절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이스마엘
을 축복하겠지만 이삭과 그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마엘을 축복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삭
과 언약을 세우겠다’는 말씀은 무엇이 더 중요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임을 나타냅니
다. 육체적인 기도도 들어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의 아들 이삭임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여러
분,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성취된 것들을 따르십니까? 아니면 주로 인간의 생각의 타당성이나 육체를 따르십
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인간이 이해치 못하는 그것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이해치 못한
다고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을 저버리지는 마십시오 계속 상고하여 그 말씀을 깊이 깨달으시기를 바랍니
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창세기 17장 22절부터 27절 까지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상고하고자 합니다. 특히
이 말씀 속에는 첫 째 할례가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되며 하나님께서 사람과 관계하실 때 주로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21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사라가 명년 곧 내년 이 기한에 아브라함에게 낳
을 아들 이삭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시는 데엔 정한 기한이 있음을 이
구절을 통하여 할 수 있습니다. 21절에서 ‘이 기한에’라는 말에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이 기한에’라
는 말은 흠정역성경에서 ‘이 정한 때에(at this set time in the next year)'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 사라가 아들을 낳을 기한을 정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일 년 후, 그 날이 사라가 이삭
을 낳을 날로 하나님께서는 정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실 때는 하나님에 의하여 정해
집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날을 정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을 통하여 사라가 낳을 아들의 태어날 시기를 말씀하심으로 그의 태어날 것을 더 구체적으로 아브라
함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므라함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말씀되고 있었습니
다. 그러한 말씀을 마치신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떠나셨습니다. 22절 말씀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 가셨더라’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구
약에서도 무슨 기적이나 표적을 행하시기 보다도 그의 선택하신 사람 아브라함과 말씀하시기를 즐겨하신 분
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려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말씀을 성경에 담아두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얼
마나 그 성경 말씀을 연구하십니까? 사람의 책도 한. 두 번 보아 그 뜻을 잘 알 수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
을 얼마나 많이 깊이 연구하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님에게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
한 것임이니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우리가 그 말씀을 잘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말씀과 관련된 소망은 있습니
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은 ‘그러하나 진리
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 속에는 우리로 하여금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관계를 시
작하신지 24년 동안 줄곧 사라가 낳을 아들에 관하여 말씀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속하여 대화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깨닫기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속 그 말씀을 하시는 분으
로서, 우리가 그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않고는 하나님의 의도를 파
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연구를 한 교회가 베뢰아 교회입니다. 베
뢰아 교회에 대하여 사도행전 17장 11절에서 잘 표명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서 ‘ 베뢰아 사
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
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
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절한 마음으로(with all readiness of mind)’란 ‘모든 준비된
마음으로’라고 흠정역성경에서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준비된 마음으로’란 이들이 말씀을 받을 준
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이미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열려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
해 모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배당에 모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참석합니
까? 이 베뢰아 사람들은 그 가운데 일단 그들이 듣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이해되지 않더라도 받아들
였습니다. 그후에 그들은 그들이 듣고 받은 성경구절들을 날마다 살폈습니다. 그 성경구절들을 살핀 까닭
은 무엇입니까? 우리 성경에서는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라고 기록되어 있고, 흠정역성경에서는 ‘저러
한 것들이 그러한가의 여부를 알기 위해(whether those things are so’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whether 이란 단어는 어떠한 것의 여부가 어떠한지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들이면 그들이 듣고 받
아들인 말씀이 그런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성경을 통하여 확인하는 과정을 베뢰아 사람들은 밟고 있었
던 것입니다. 이로써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던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라고
불리웠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칠 수 없습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서 그것이 그런가의 여부를 알기 위해 매일 성경구절을 살핍니까? 그 설교말씀을
성경을 통하여 살피고 깨닫는 삶을 살아가십니까?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
들이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하고 하신 것을 대화를 나눈 것 뿐 이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들은 말씀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인식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떠나신 것에 유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그 관계를 설정하고, 그 관계가 유지
되는데 있어 가장 큰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생각으로
듣고 또한 세상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이 할례를 받아야만 하였습니다. 그
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곧 그가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가 생각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100살인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겠는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말은 100살인
남자가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의 나이가 한해가 지나면 100살이었기
에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그리고 자신의 노쇠함을 기준으로 자신이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사람의 생각
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신은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90세된 사
라가 어떻게 생산하리요‘라고 말하였습니다. 90살 된 사라가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의미의 말이었습니
다. 사라는 이미 경수 곧 월경이 끊어진 상태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사람의 생각으
로 곧 생리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
람의 생각과 육체의 한계로는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이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서 아브라함 자신과 그 아들 이삭과 세우시는 언약에 대하여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그 언약
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믿을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년 이 맘 때, 사라가 아들을 낳으
리라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그 언약에 대하여서도 믿을 수 없었습
니다. 그 언약은 그 아들 이삭과 함께 세워지는 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행해지는 할례는
하나님의 그 언약에 대한 표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엔 사람의 육체의 생각으로는 이
해할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할례를 함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남자의 성기의 일부분 곧 남자의 상기
표피의 일부분의 껍질을 잘라내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는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은 육체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할례
를 통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사람의 피부를 다 벗길 수 없기에 아
무 필요 없는 부분의 그 껍질 일부를 잘라냄으로 그 일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각이나 육체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창세기 18장 1절부터 8절 까지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아브라함
과 이스마엘 그리고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집에서 태어나 성한 남자들
과 돈으로 산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였고
이스마엘의 나이는 13세였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은 기간은 당일 곧 하룻 동안이었습니다. 하룻만에 그들
은 모두 다 할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하신 말씀대로 하례를 행하였습니다. 그의 모든
것들은 자신의 생각을 좇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7장 23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브라함
은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가 할례를 행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
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시점에 유념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한 후에, 하나님
(the Lord)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육체의 표피 일부를 잘라낸 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육체
를 따르거나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은 육체 저 밖에 있으며, 사람의 생각 저 건너편에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 가운데 있거나 사람의 생각을
하는 중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며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므레라는 장소의 수
풀 근처 곧 마므레 평야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는 정오 즈음(heat)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 장막 곧 천막 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바라본 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곧 그 곁
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1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여호와 곧 주님으
로 단수로 말씀하셨습니다. 정관사 the를 사용하여 한분을 드러내셨는데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자 세 사
람이 그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분명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디에 오신 것입니
까? 여호와 곧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 하셨는데, 그가 보니 세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세사람이 왔다는 말인가요? 우리는 여기서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됩니다. 여기 세 사람
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다음의
아브라함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 오신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 그들을 보자마자 그들을 향해 달려 갔습니다. 그 곳에 다달은 아브라함은 몸을 땅에 굽혀 절하였습니
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눈을 들었다(lift up)고 합니다. 눈을 든다는 것은 눈을 위로 든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들은 우리들의 눈을 위로 들곤 합니까? 나 자신을 바라봅니까? 아니면 다른 주변의
사람들이나 상황을 바라보십니까? 여러분의 눈을 위로 바라보십니까? 우리의 눈을 위로 들 때, 우리들은 우
리들이 평소 보는 것들과는 다른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때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아브
라함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뛰어갔습니다. 그때가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와 100세 사이였습니다. 아브라함
이 99세를 넘어 100세를 향하여 시간이 진행되어 가고 있었으니 그가 매우 늙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들을 보자 뛰어 갔습니다. 그가 뛰어 갔다는 데서, 그가 뛰어 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는 그들이
보통의 사람들이 아닌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귀중한 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매우 늙어 있었는
데도 그는 그를 찾아 오신 분이 누구인지 알았고 그래서 늙었으도 그들을 향해 뛰어 간 것이었습니다. 그
는 늙었어도 그들을 알아 보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는 분별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라는
것을 그는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을 아브라함이 알아 보았다는 것은 그들이 전에도 아브라함을 찾아
온 적이 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분별력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가 비록 하나님께서 하시
는 말씀을 잘 이해 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하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
여 아브라함은 그들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뛰어갔다는 데서 그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습니
다. 그는 그 늙은 육체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그들을 향해 뛰어갔던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향하여 ‘내 주
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주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인데도 그들을 향하여 주님이라
고 불렀던 것은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달한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아브라함은 불렀을 것으로 보
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아브라함이 '내가 지금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라는 그의 말을 시작하면서
주님간의 관계는 은혜로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하나님간에는 은혜가 필수적이었습니
다.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간의 관계가 시작되고 계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
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장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며 행위
에서 구원받은 것이 아님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은혜로 얻은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
십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 7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은혜의 풍성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연관
시키고 있음에 유념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입어
야만 가까이 할 수 있음을 그의 말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노아도 그러하였습니다. 창세기 6장 8절에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노아가 노아 홍수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어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주님으로 보아 기도하듯이 그들에게 간청한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자신을 떠나 지나가지 말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지 않으시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간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그들을 영접해 물로써 그들의 발을 씻기고 나무 아래 쉬면서 떡을 대
접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네 말대로 그리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아브라함은 서둘렀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
은 아브라함은 먼저 사라에게 급히 가서 사라에게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지고 반죽하여 떡을 속히 만들라
고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짐승에게로 즉 소떼에게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
에게 주어 그 하인이 그 송아지를 급히 요리하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
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나무 아래 모셔서니 그들이 먹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
함은 그들에게 대접하는데 있어 서둘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그들을 대접하는데 서둘렀을까요? 아브라함
이 그들을 대접하는데 있어 달려가 자신이 송아지를 고르고, 그 아내 사라에게 급히 가서 속히 떡을 만들
라고 하는데서 아브라함이 대단히 서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
낸 사람들이 그리 오래 있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서둘렀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 오신데엔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잘 알고 있어 자신을 지나치
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일들을 서둘렀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 오셨음을 인식하였을 때, 서둘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과 말씀에 대단히 민감하였습니다.
미록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는 서둘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서두러십
니까?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창세기 18장 9절부터 15절 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
다. 그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9절에서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
가 어디 있느냐’라고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사라가 어디에 있는 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금
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만 개인적으로 만나셔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라
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장막 안에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까지는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대화하고 잇었으나,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이 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수로 말씀되고 있습니다. 10절 시작 부분에 ‘그가’라고 3인칭 단수가 사용되고 있습
니다. 여기서 그는 단수로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 10절 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9절 까지에서는 복수로 그
들이라고 언급되었지만, 10절 부터는 15절까지는 단수로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의 전환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 부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
고 계십니다.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 기한이 이를 때에(according to time of life)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란 여기선 생명의 때에 따라서’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때에 따라서’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예, 태아의 때에 따라서, 곧 태아
의 자람에 따라서 내가 네게 분명히 (certainly) 돌아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네 아내 사라에
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연이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실 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면 역
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는 일부터 다른 하나님의 일에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어야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여기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
을 하실 때, 사라는 그 뒷편에 있었던 장막 문 안에서 있었습니다. 거기서 사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
습니다. 11절 말씀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육체적 상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11절은 ’아브라함과 사
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 곧 월경은 끊어졌는지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의 생리적
그리고 신체적 상태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 10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
과는 대조적인 그들의 상태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의 상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 대하여 성경은 부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라가 12절에서 사라가 보인 반응의 이유에 대하
여 11절은 나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12절에서 사라는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라도 아브라함 처럼 속으로 웃었습
니다. 여기서도 사라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었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생리적 상태에
따른 올바른 생각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월경이 끊어졌기에 여인으로서는 사라는 죽은 상태
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라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태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웃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기를 낳는 일이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남편도
늙었기에 아기를 낳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비웃었던 것입니다. 더하여 사라는 12
절에서 ’내가 어찌 낙 곧 즐거움이 있으리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여인으로서는 지금까지 아기가 없
었고 이제는 늙었으니 아들을 낳을 수 없어 어떠한 즐거움이 사라에게 있었겠습니까? 사라는 자신의 상태
를 숨김없이 12절에서 드러내었습니다. 자신은 지금 낙 곧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즐거움이 없는 사람에겐
그것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바라만 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
을 쳐다보면 안되는 것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쾌락은 커녕 절망과 실망에 젖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라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라가 비웃은 일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
지 못하여 그 말씀에 따르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
니다.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확실히/of a surety) 아들
을 낳으리요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의 비웃음을 아셨고 사라의 말을 들으셨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하나님을 비웃고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 것을 다 알고 계
시며, 그 가운데 하는 우리들의 말을 다 듣고 계신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사라의 말
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하나님께는 맞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4절 서두에 ’여
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말씀은 흠정역성경으로 보면 ’주님께 너무 어려운 어떤 일이 있겠
느냐?/ 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입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 보면, 하나님을 위해서는 불가능한
곧 너무 어려운 일들이 없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를 다시 뒤집어 보면,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들이
있고 너무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불가능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예 주님을 위해서(for the Lord) 너무 힘든 일이 없다는 곧 불
가능이 없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실 때 주님 당신을 위해서 하십니다. 그러
한 의도의 말씀을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10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더 반복하시고 계십니다. 14절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고 하나님께서는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해를 하든 하지 않든 그의 계획의 말씀을 하
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해와 상관없이 그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의 말씀을 깨닫기 까지 하나
님의 말씀을 지속하시는 하나님을 여기서도 또 한번 보게 됩니다. 그때 사라가 두려워하였습니다. 자신이
혼자 웃엇고 혼자 말한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말씀에 대하여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치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였기에 두려워하게 되어있기 때
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식을 누리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깨닫지 못함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라도 두려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을 승인치 않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라는 주님
의 말씀을 부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시는 일을 사라는 여기서 부인하였습니다. 이는 그녀가 두려웠
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한데서, 사람도 두려우면 거짓말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라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라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지 않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사라
는 자신이 웃지 않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내가 웃지 않았다고 말하
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라는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웃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라
의 종교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종교는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
는 사라 처럼 사실을 왜곡하거나 형식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고 사라에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비웃은 사라에 대하여 벌을 내리신 것
이 아니라 사실을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벌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녀의 깨닫지 못한 상태 곧
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비웃은 것을 분명이 드러내셨습니다. 죄는 죄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모
습과 벌을 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더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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