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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란 무엇입니까?
200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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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십일조란 무엇인가?


* 십일조란 무엇입니까?

십일조는 자신과 관련된 것들(몸, 시간)과 그 소득의 십분의 일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관련해서만 십일조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에, 누가 사람을 창조하
신 것입니까? 예,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무엇을 나타냅니까? 이는 사람 전
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그 십일조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방 민족에게
는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일조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기회이며 특권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오늘날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큽니
다. 천사들도 흠모할 만한 일이 우리에게 나타났으며, 우리 오래 전에 살았던 선지자들과 믿음의 조상들이
우리 때 보기를 사모하고 열망하였습니다. 왜냐구요? 우리는 본래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든 죄의 사함을 입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들을 성
령님으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고,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들을 깨닫기만 하면 되고, 또한 그 말씀들을 깨닫기만 하면 그 마음에서 부터 기쁨이 넘치
는 건 또한 무엇입니까?

구약시대에는 죄 지은 사람들이 그 죄를 지은 때마다 자신의 동물을 속건제로 드려야만 하였습니다. 그 제
물을 드리는데 있어 자신이 그 동물을 기르고 있다면 그 동물을 드리면 되었지만, 그 동물이 없다면 그 희
생제물을 돈으로 사야만 하였습니다. 그 드리는 제물 곧 동물은 흠이 없어야 하고 점도 없는 극상품이어야
만 하였습니다. 극상품을 찾기 위한 정성도 쏟아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동물을 자신의 손으로 끌고 가야
만 하였습니다. 노력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 동물의 머리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그 동물
에게 돌려야만 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져야만 하였습니다. 이는 자
신의 수치나 창피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손으로 그 짐승을 죽여야만 하였습니다. 그 후
에야 제사장이 그 제사의 규범대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구약시대엔 자신의 죄를 사함받는데 이러한 과정
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있어 우리의 몸과 시간 그리고 재물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들을 사하셨기 때문입
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나 우리 구원 받은 사람
들에게 있어서도 소용되는 바가 있어 하나님께서는 십분 일만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십분 일만 하나
님께 드리도록 규정하시고, 하나님께 드리는 그 십분 일은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을 섬긴 지 35여 년 동안, 특히 단독으로 목회를 한 지 29년 동안에 경험한 바로는, 하나님의
일에 그 십일조와 헌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십일조의 드림이 없다고 하여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
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은 후, 그의 일 곧 교회의 일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나 일들을 통하여 모두 채워주심을 볼 때, 그 십일조란 것이 꼭 교회의 운영만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재물뿐만 아니라 몸과 시간도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는 그 최소한의 것을 기쁨과 감사를 바탕으로 바치면 마음과 물질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해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는 것 혹은 드리는 것 자체가 축복이며 남에게 주거나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 자체가 그
사람에게 기쁨이 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우
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크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십일조를 율법시대와 같이 명령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났
기에 명령이 아니라, 고린도 후서 9장의 말씀과 같이 기꺼이 하는 기쁨으로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
는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 없이 드려지는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나 헌물이 될 수 없습니
다. 그래서 교회는 그 십일조와 헌물을 받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십일조와 헌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지금 억지로 드리고 있거나 부담으로 드리고 있다면, 지금 그 십일조와 헌물을 중단하십시오. 하
나님께서 받지 아니하는 십일조와 헌물을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금방 구원받은 사
람들에게 십일조를 하도록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혹 그가 교회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십자가로 죄사함 받
은 기쁨으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고 싶어 한다면 예외이겠지만, 금방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자라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기쁘고 감사하
는 것이 있어-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지 않는 십일조는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서 축복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았는데도 인색한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왜 구원의 기
쁨이 없는 가를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 머리로 아는 정도의 십자가의 공로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말씀을 깨달았는가를 살필 때, 자신이 확실히 깨달았다면 그 십자가와 예수님
께서 이루신 일과 관련된 말씀 곧 자신이 처음에 깨달은 말씀을 통하여 그 기쁨과 감사가 살아날 것입니
다. 십일조 헌금이 무의미하게 보이거나 아까와 보이는 분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깨달았는지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분에겐 십일조헌금이 거론되
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깨달음과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분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은 적이 있
는 가를 살펴보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에서도,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에게 받았다
면 감사가 나오게 됨이 당연한데, 하물며 하나님으로부터 그 놀라운 구속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
의 역사를 깨달았다면, 어찌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사실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께 대
한 감사의 표시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 그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
가 펼쳐졌다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고 있습니
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의 비유들 중의 일부는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나타내고 있습
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란 말로만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그 하나님의 나라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
로 말미암는 기쁨과 평안, 그리고 감사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감
사치도 아니하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대표적인 것은 하나님께 감사치 않는 것
입니다.


* 언제부터 십일조가 드려졌습니까?

1. 율법시대 이전에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십일조에 관한 최초의 성구는 창세기 14장 18-20절에 나오며, 여기서 아브라함은 왕들과의 전쟁에서 거둔
모든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이 십일조는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드려졌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전쟁에서 다른 노획물들에 대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단
지 자신의 병사들의 먹은 것은 그 노획물들 중에서 제하였고 자신은 다른 노획물들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전쟁에서 아브람은 자신의 조카 롯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에게 속한 사람들과 재물을 되찾은 것으로 아브람
은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기쁨을 느끼게 되어 감사의 표시로, 자원하여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
다.
야곱의 경우에, 야곱이 그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가고 있던 어느 날 밤 돌단을 베고 잠을 자던
중, 꿈에 하나님의 사다리가 하늘에서부터 땅에 내리워졌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
고 하나님께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면 자신이 하나님께 그 소득의 십분 일을 드리겠다’
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그 자신이 본 하늘의 현상과 지켜주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께 자원하여
드리겠다는 의미입니다.

2. 율법시대 하에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
27:30)’. 구약의 율법아래서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상기한 레위기서의 말씀
은 십일조가 성물이며 하나님의 것임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던 자들에게는 물질적이
고 육체적인 축복이 있었고, 불복종했던 자들에게는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십분 일을 드리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하나님의 방식대로 드리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였습
니다(말 3:8-12). 이러한 책망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들이 좋은 것은 그들 자신들의 몫으로 남겼고,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제물은 병들고 상처 입은 동물이었다’는데 있었습니다(말 1:13-14).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 책망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보
다 더욱 중요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을 그러한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 동물들을 드리는 것에 더욱
더 책망하셨습니다.

3. 은혜시대에도 십일조는 기본적인 드림(basic offering)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눅 11:42; 마 23:23;these ought ye to have done,
and not to leave the other undone).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1장 42절에서 '이것(these; 이것들)도 행하
고 저것도(the other)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시는 데서, 십일조도 버리지 않고 계속 드리는 것임
을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가 율법 하에 있는 시대이거나 아니면 그 바리새
인들이 율법 하에 있기에 그렇게 ‘십일조도 하고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한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율법 하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율법
하에서만 십일조의 드림이 있었고 율법에서 벗어난 은혜시대에는 십일조의 드림이 없다’고 말합니다. 신약
성경에 십일조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시의 구원받은 이들은  넘치도록 드렸기 때
문입니다. 굳이 십일조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때가 초대교회 당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시대엔
십일조가 아닌 다른 헌금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엔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
떠한 헌금으로 하나님께 교회를 통하여 드렸습니까?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
누어 주었다’는 사도행전 2장 45절의 말씀을 상고해 볼 때, 십일조가 아닌 자기 재산과 소유를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십일조가 아닌 다른 헌금으로 대체되었다면 바로 그러한 헌금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사도행전에서 말씀하는 그 같은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고린도후서 9장 6
절에서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은 실제로 헌금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소득의 비율을 따라 많은 소득의 비율로 드리거
나 혹은 적은 소득의 비율로 드림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100만원을 버는 자의 십일조 헌금은 10만원이
나, 그가 20만원을 들였다면 20퍼센트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200만원을 버는 자의 십일조는 20만원인
데, 그가 20만원을 드렸다면 그는 정확한 10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사람은 똑같
은 금액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소득의 20퍼센트의 헌금을 드린다가 많이 바쳤다고 하신다
는 의미입니다. ‘십일조가 다른 헌금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하는 그분들이 이 말씀에서 의미하는 소득의
많은 비율의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한 사람들은 십일조나 많은 비율의 헌금을 해도 무슨 보상이 없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말씀에서 보면,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
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예, 하나님께 억지로나 부득이함으로가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그리고 감사함으로
소둑의 비율이 많은 헌금을 드리는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해도,
그 십일조가 하나님의 축복과는 관게가 없다고 하는 분들은 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분들입니까? 그리고 고
린도후서 9장 8절에서 ‘모든 착한 일에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언급하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
까? 고린도 후서 9장을 전체적으로 살펴 보면, 착한 일이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들
을 위해 헌금을 넘치게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일조가 다른 헌금으로 대체되었다’고 말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실제로 넘치게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신약성경에서는 차고 넘치도록 드리는 모
습을 발견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헌금들은 실제로 십일조헌금보다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훨씬 더 많은
금액의 헌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라는 최소한의 드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
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하였다’고 바리새인들처럼 자랑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자로
서 최소한의 것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무엇으로 드려 갚겠습니까? 그런데 십일조를
드렸다고 자랑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남보다 더 깨달아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누리
는 사람들은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에 헌물을 더하곤 합니다. 십일조가 구원받은 우리에게 있어
선 ‘법’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십일
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소한의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은혜
가 넘치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였다’고 나는 나의 의무를 다하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드림이란 율법
에서도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평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부자는 소나 양으
로, 가난한 자는 비둘기새끼를 하나님께 드리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드림에 어떤 차별도 없이 동일
한 대우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 하에서 부자는 그 제물로 비둘기 새끼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로 각각 별도의 제물이나 헌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로
볼 때, 십일조는 그러한 하나님의 공평의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300만원을 벌었다면 30만원
이 그의 십일조로 드려지게 될 것이고, 100만원을 벌인 사람은 10만원을 십일조로 드릴 것입니다. 그 십일
조의 금액 차는 분명 있지만, 그들의 십일조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평하
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교인들의 삶을 평균케 합니다(고후 8:13-14) 또한 율법시대 이전에
도 자발적인 십일조가 아브라함과 야곱에 의해 드려졌다는 것을 볼 때, 그러한 드림이 지금도 여전히 지속
되고 있습니다(히 7:5-7).

4. 십일조나 헌물을 드리는 자들의 조건
ㄱ. 자기 자신을 바친 후에 십일조나 헌물을 드리는 것입니다.(고후 8:5).
ㄴ. 그리스도인의 바침은 사랑으로 드리는 것입니다(고후 8:8,24; 눅 11:42).
ㄷ. 하나님께 은헤에 대한 감사함으로 드립니다 (고후 9:12).
ㄹ. 바침은 정규적으로 이루어집니다(고전 16:2).
ㅁ. 자원하여 즐겁게 드립니다(고후 9:7);‘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드리지 않습니다.
ㅂ. 우리의 바침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조용히 드립니다
(마 6:1-4).
* 그러한 조건들이 구비되지 아니한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5 십일조와 헌물을 드린 자들에 대한 축복들
ㄱ. 바침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돕습니다(고후 8:1).
마게도냐형제들이 하나님께 드린 드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말씀
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보상은 우리가 바치는 것에 대해 넘치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나 헌금들은 실제로 물질이기에 물질로서 안겨 주시는
것입니다 (고후 9 : 6, 10-11).
* ‘주는 자’에 대한 누가복음 6장 38절의 약속
a. 후히 되어(good measure)
b. 누르고(pressed down)
c. 흔들어(shaken together)
d.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running over)
ㄷ. ‘주는 것’ 자체가 ‘더 복된 것(more blessed)’입니다. (행 20장 35절)
ㄹ. 말라기서 3장 10-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시며,
여러 재앙이나 재난에서 보호하시며, 하는 일을 잘되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
을 하십니다.

*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을 가로 막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ㄱ. 탐욕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가로 막습니다.
감사의 표시를 못하게 합니다.(눅 12: 29-31; 16:13).
ㄴ.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가로 막습니다
(눅 12: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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