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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건강한 장수, 축복, 그리고 이삭의 신부를 위한 늙은
20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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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창세기 24장 1절 상반절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건강한 장수에 대하여 살펴보고
자 합니다. 24장 1절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어 장사지낸 후 이어진 내용입니다. 1절은 ‘아브라함
이 나이 많아 늙었고’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상태를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아브
라함은 그때 나이가 많았고 또한 늙었습니다. 그가 ‘나이가 많았다(well stricken in age)’는 것을 흠정
역성경으로 직역을 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나이로 공격을 받은‘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그는 아직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그 나이로 공격을 당하고 있을 뿐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가 그 나이로만 늙었을 뿐 임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나이는 그 때에 137세를 넘긴
나이였습니다. 당시의 평균 연령이었던 120세를 훨씬 넘긴 것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기서 우
리는 아브라함이 오래 살았음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그렇게 오래 살게 된 까닭도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오래 살기 위하여 몸에 좋은 음식이
나, 몸에 좋은 보약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의학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
나 그는 오래 살았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참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래 살
고 싶지 않습니까? 예, 거의 모든 분들이 그렇게 오래 살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지 않으
시는 분들은 그렇게 살고 싶으나 마음의 좌절이나 낙담으로 그 삶을 포기하고 싶어 혹은 그럴 가능성이 없
어 보여 그렇게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아브라함
은 실제로 그렇게 당대의 인간들이 누린 그 수명을 훨씬 넘긴 나이로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엔 우리가 무
시하고 간과하는 것을 아브라함은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의 말씀을 나누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즐겨 하심니까? 그리고 그 들은 말씀을
계속 생각하십니까? 그 생각하는 말씀이 개인적으로 깨달아지기 까지 계속 묵상하십니까? 아브라함은 하나
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리기도 하는 대화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의 삶
의 대부분에 그러한 상호 말씀의 교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잠언 3
장 1절과 2절 상반절에서 그 장수의 까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언 3장 1절과 2절 상반절의 말씀은 ’나
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
게 하며‘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흠정역 성경은 ’네 마음이 내 명령들을 지키게 할지어다‘라고
언급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면 장수한다는 말씀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
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가끔 혹은 그 명령들 중 어느 하나나 몇가지의 명령
들을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명령들을 모두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이 잠언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명령들을 몸으로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불가능
한 일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시기 바로 전에,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은 또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의 법을 잊어
버리지 않으려면 어떠한 일이 사람에게 있어야 합니까? 예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법과 관련
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그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번 성령님으로 깨달으면 그 말
씀이 잊어지지 아니합니다. 그 깨달은 법 곧 말씀이 잊어지지 아니하여 아음이 하나님의 명령들과 관련된
말씀들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간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씀들을 우리
의 마음이 간직하고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간직된 깨달은 말씀이 우리에게 생각날 때, 하나님
의 명령들이 몸으로 준행될 것이나, 그 깨달은 말씀이 생각나지 아니할 때에는 하나님의 명령들이 몸으로
무시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몸을 입고 있어 이러한 현상이 교차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잊어버리
지 아니하고 늘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확실히 그 무언가를 깨달아 확실한 경우
에만 그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든 명령이든 그러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장수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으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접하였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거나 잊
어버릴 수 없었고 또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명령들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
지 않거나 그 마음이 하나님의 명령들을 잘 간직한다는 것은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
다. 성령님의 말씀을 통한 도우심이 있어야만 그 법이나 명령에 대한 순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
서 1장 21절은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라고 말씀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진리
를 순종하는 것으로 마타내고 있으나 흠정역성경은 ’너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through Spirit) 진리를
순종함으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도 성령님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께
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요즈음 같은 타락한 종교세태와 같이 무슨 큰 기적이나 아니면 희환한 일들
응 하는 것이 성령님의 주된 일입니까? 아닙니다. 상령님의 주된 일에 대하여 요한복음 16장 7-14절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히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억지나 강
요로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
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가 기쁘게 그 진리 가운데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진리 곧 하
나님의 말씀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
씀을 사람이 깨달을 때, 그 깨달은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법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며 하나님의 명
령들을 순종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건강하였습니다. 그는 나이만 많아졌
지 그의 활동은 정상적으로 하였다고 보아집니다. 이러한 노인을 본 적이 있습니까? 보통의 경우 오래 사
는 분들 대부분은 연세가 많아 겨우 거동하거나 약간의 일을 할 뿐이지만, 아브라함의 경우는 달랐습니
다. 그는 그 연세에도 건강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건강의 이유를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
습니다. 그가 건강한 비결은 잠언 3장 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잠언 말씀은 ’여호와 곧 하나님을 경외
하며 곧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떠나면 건강해진다는 요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
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떠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사람의 노력으로나 소원으로 되는 것이 아
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삶을 통하여 그 일이 가능해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
의 말씀을 듣고 듣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
었고 악을 저절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악을 떠나라고 한다고 해서 사람이 그 악을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
까? 아닙니다. 그 악을 떠나야 한다는 그 이유를 발견할 때, 그 때에야 그 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악이든
습관이든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그 악과 그 습관은 좋은 것이며 익숙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버리는 것은 사람의 조언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깨닫지 않고
는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악을 떠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는 처음엔 그러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계
속 듣는 가운데 그러한 상태에 저절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건강을 유지하게 된 것입
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이 건강한 가운데 오래 살았음을 보았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을 만나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창세기 24장 1절 하반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복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합니다. ‘복’자는 우리들의 생활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을 통하여 ‘복’
을 받기를 희구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데 이 ‘복’에 대한 두 한자를 풀이해 볼 때, 복 복 그리고 복 희자에 ‘보일 시(示)’가 ‘포함되어 있
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형문자들을 통하여 ‘복’은 누군가에 의해 보여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상형문자는 그 무언가를 그 글자를 통하여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 이 상형문자가 나타내는 그 무
언 가 혹은 그 누군가를 찾는 것은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을 얻기 위하여 그러한 일들
을 주도하시는 분을 발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는 것은 성경
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30장 15절에서는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복’을 우리 앞에 두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
떻게 축복하시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절 하반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고 말
씀되고 있습니다. 흠정역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범사를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축
복하셨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the Lord blessed Abraham in all things 라는 말씀을 보면, 우리는 하
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며 누구를 어떻게 하고 계신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 사업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을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차이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어떠한 사물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님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재산이나 사물
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을 축복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
러 가나안땅을 보이실 때도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신 것 같이, 여전히 아브라함에게만 그 초점
을 맞추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더라고 말씀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하는 사업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을 때
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사람을 축복하시는 분이십니
다. 하나님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 어떤 사물도 하나님껜 중요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자신
이 아주 늙어 가거나 소망이 끊어질 때, 그것을 발견하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이 중요하였습
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는데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한 일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하나님께 잘한 일은 무엇입니까? 단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잘한 것들이 잘못한 것들
보다 더 많아서 축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가 잘한 일들을 하나 하나 열거해 봅시
다. 그중 첫째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모리아산에서 드린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 아브라함을 메소포타미아에서 불렀을 때, 그 부르심에 응하였던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
르심을 따라 간 것은 하나님께서 그 가나안을 미리 보여 주시고 그를 인도하여 갔기 때문에 그렇게 그가
잘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가 잘한 점을 또 든다면, 그가 때때로 하나님의 하시라는 데로 한 것들일
것입니다. 그가 사라에 의하여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사라
의 말을 들으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는 종종 하나님의 천사들이나 하나님의 사람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접하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하나 더 든다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이해되지 않아도 그 말씀을 고집으로 반대하지는 않았
습니다. 그가 깨달아지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받아두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
다. 그는 그러한 우리가 볼 때 하나님께 잘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
한 것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이땅 곧 가나안 땅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브
라함은 장막을 치게 될 때, 벧엘과 아이 사이에 천막을 쳤습니다. 벧엘은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고 아이는 하나님의 저주를 나타내는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는 그 중간에 그의 천막을 쳤던 것
입니다. 그 후에 그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남쪽으로 점점 내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
여주시고 인도해 오신 그 가나안 땅을 점점 더 이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도 점점 더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던 까닭은 그가 보았던 가나안과 실제의 가나안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
다. 그는 가나안을 떠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따랐음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
다. 그가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을 때, 가나안 땅에 흉년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무엇을 하였습
니까? 그는 그때 애굽 곧 이집트에 체류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입니다.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그 아내 사래에게 ‘자신의 누이라’고 말하도록 말하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양
자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에게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중 비둘기새끼를 쪼개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께 피를 드린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크게 노하셨고 그 후손이 400년간
이방에서 노예 생활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제안하여 그
는 사래의 하녀인 하갈과 동침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갈이 동침한 것을 깨닫고 그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
게 되고 갈등이 그 가정에 조성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사라로 네게 아들
을 낳아주게 하며 사라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아브라함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엎드
리어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으로 아들을 낳는 것에 대하여 불신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하
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아뢰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아브라함
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은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는 모든 일들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잘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
였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는 모든 일들이 성공하였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
브라함을 축복하셔서 아브라함의 모든 일들 혹은 아브라함이 가진 모든 것들이 잘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에
서 우리가 유념해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 아브라함의 하는 모든 일들과 혹은 가진 모든 것들입
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어도 어떻게 아브라함의 모든 것들을 잘 되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
이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것들이 잘 되었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 수 있
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참으로 그 사람이 복을 받았는가의 여부가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
이 확실할 때, 하나님께서 그가 하는 모든 일잘디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일의 형통입
니다. 하나님께는 그 중 하나라도 제외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서는 당신이 축복한 사람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사람을 축
복하면 모든 것들이 잘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들이 다 잘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창세기 24장 2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집에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 있었습니다. 이 종에 관하여 우리는 두 가지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
나는 이 종이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종임을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그의 모든 소유를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종이 아브라함의 재산을 관리하는데 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아브라함의 재산을 자신의 것과 같이 관리하였다고 보아집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보았듯이 아브라
함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는 거부였습니다. 큰 부자였던 아브라함이 그 재산을 관리하는데 있어 좋
은 관리자가 없었다면 어떠하였겠습니까? 아마도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유들을 잘 관리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겐 하나님께서 주신 소유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사
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아브라함의 소유가 잘 유지하게 된 데에는 이 늙은 종의
역할도 상당히 컸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종이 아브라함과 함께 오랫동안 함께한 자임을 알 수 있습
니다. 늙은 종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종은 아브라함의 종이지만 아브라함의 친
구와 같은 자이었을 것으로 보아집니다. 고대사회의 주종관계에 있었다 하더라도 아브라함 역시 사람이어
서 친구가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의논할 상대가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ㄱ께 기도로 여쭈기도 하였겠지만 그 의논 상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을 위하여 그 늙은 종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늙은 종은 아브라함의 친구와 같이 함께 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늙은 종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첫마디는 늙은 종의 손을 아브라함의
환도뼈 곧 넓적다리 밑에 넣으라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고대사회의 맹세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후
에 아브라함이 3절에서 계속하여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
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라고 아브라함은 그 늙은 종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
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전지 곧 우주를 창조하셨고 또
한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어찌 오묘한 천지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목축을 하는 사람으
로서 그는 땅과 하늘을 움직이시는 분이 누구시라는 것을 그의 목축업을 통하여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하
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고 그가 하는 그리고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잘되게 하셨다는 것은 그의 목축업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움직인다는 것을 수없
이 보아왔을 것입니다. 목축업도 농사와 같이 하늘과 땅에 의하여 그 성공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서 적절한 비가 내려야 초원이 조성되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초원이 있어야 목축을 할 수 있고 또한 비가
내려야 가축들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임을 생활을 통하여 알
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
는 저에게 있어 하늘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땅이란 저의 몸과 혼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리
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깨닫게 하려고 무척 애를 쓰셨고 또한 다른 필요
한 것들도 모두 다 공급하신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하늘과 땅은 실제 하늘
과 땅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것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그 늙은 종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분임을 드러내고 있
습니다. 왜 그 늙은 종이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가 발견한 것을 계속 반복라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알고 있든 혹은 그 늙은 종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계속적으로 고백하고
시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늙은 종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맹세케 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
면 아브라함은 그 무언가 중요한 것을 하고자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늙은 종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되 주
하나님으로 맹세케 하였습니다. 맹세는 사람에게 하되 그 맹세를 하늘과 땅의 하나님으로 하게 한 것입니
다. 이러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하는 맹세인 것입니다. 늙은 종도 아브라함과 같이 경험한 하늘과 땅을 움직
이시는 하나님으로 맹세케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늙은 종으로 맹세케 하는 것은 3절 하반절
과 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
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아브라함이 그의
늙은 종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맹세케 하는 일은 여기서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을 위하여 신부를
택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늙은 종에게 내리는 사명은 두 가지의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땅 곧 가나안 땅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
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비단 자신의 민족을 통하여 그 며느리를 얻겠다는 말일까요? 만일에 아브
라함이 하나님으로 이삭을 얻지 못한 그 이전이라면 그렇게 볼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모리아 산에
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전의 아브라함이라면 그 친족의 딸을 며느리로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
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그러한 인간적인 것
을 따라 그 아들을 위한 아내를 구하고 있지 않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곧 아브라함이 거주
하던 그 땅의 딸들을 이삭의 아내로 택하지 말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아브라함은 아브라함 자신이 거주
하는 그 땅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우상을 섬기는 민족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
들이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당시의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딸들을 아브라함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아브라함
은 그의 친족 중에서 그 딸을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고향에 사는 자신의 족속에게 가서 이
삭의 아내를 택하라는 아브라함이 말로만 본다면, 아브라함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친
족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 메소포타미아 있는 아브라함의 친족은 하나님을 따라 움직
인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가나안 사람들과 그렇게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아브라함은 그러한 말
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당시의 고대사회의 풍습을 따라 근친간의 결혼풍습을 따라 그렇
게 말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시기전 그리고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리기 정
의 아브라함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하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
면 왜 그가 그 고향의 그리고 그 친족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려고 하였을까요? 예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친족 중에서 아무쪼록 한 사람을 불러내기 위함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의해 불리움을 받
았고 하나님에 의해 가나안을 보았고 하나님에 의해 인도함을 받아 가나안 땅에 이르렀고 하나님에 의해
보호하심을 받았고 하나님에 의해 이삭을 얻었고 종국엔 하나님에 의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
님이 어떠한 분임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나 곧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나, 그리고 그의 생활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의
친족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바울의 그 간절한 마음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저주
를 받아 지옥에 떨어질찌라도 자신의 친족 형제들이 구원받기를 원한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말
년에 그의 친족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처녀가 이삭을 통하여 알게 되기를 바랐던 것입
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창세기 24장 5절부터 9절 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
하여 그 아내를 가나안 땅이 아닌 아브라함의 고향의 그 친족에게서 찾고자 한다는 말을 들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5절에서 ‘여자가 나를 쫓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라고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서 그 늙은 종에겐 의문이 생겼던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의 고향에 가서 아브라함의 친족 중에서 처녀
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 처녀가 가나안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그리고 데려가야
하지 아니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것에 관하여 아브라함의 의중을 물은 것입니다. 이 늙은 종은 깊은 생
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머너 먼 곳까지 가서 이삭의 아내될 처녀를 찾았다 해도 그 처녀가 오고자 아니
하면 그것 역시 큰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찾은 처녀가 적합한 처녀이기에 이삭을 그리로 데려가도 되는지
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종이지만 아브라함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
다. 그 늙은 종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 움직이는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를 믿었다고 보아집
니다.그는 역시 참다운 종이었습니다. 주인의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
함은 6절에서 그 종에게 대답하여습니다.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라고 아브라함
은 그 종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말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찾는 처녀는 어떠한 처
녀입니까? 예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이삭을 위하여 준비하실 그 처녀를 아브라함은 찾고 있었던 것입니
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처녀가 이곳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그만 두어라’라는 의미의 말을 하였던 것입
니다. 오고자 아니하는 그 처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처녀가 아니기에 그 처녀는 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
다. 연이어 아브라함은 7절에서 자신의 간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
버지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라고 말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신부를 찾는 일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본토에서 떠나게
하셨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이 곳으로 오게 하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을 위해 그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였던 것입니
다.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예 자신을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계속하여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라고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맹세를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 늙은 종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서 자신의 아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그 약속을 생각해 낸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그토록 믿을 수 없었고
이해되지 않았던 그 말씀을 이제는 그가 그 늙은 종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그 말씀을 깨달
아 믿을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이 땅 곧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맹세하셨기 때문에 그 처녀가 있는 땅으로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그가 그 사자 곧 천사를 네 앞서 보낼지라’고 말하였습니
다. 아브라함은 지금 그 늙은 종을 보내면서 하나님과 그 천사를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늙은 아브라
함의 종보다 먼저 그 천사를 보내신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 아브라함은 그것을 익히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천사를 먼저 보내신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천사들을 보내셨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천사
를 미리 보내 이삭 대신 제물될 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
떠한 일을 위하여 미리 일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큰 부자가 된 것도, 그
리고 자신을 지금까지 보호하신 것도 모두 다 하나님께서 미리 보내신 천사에 의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
니다. 그는 이제 그 아들을 위한 신부를 구하는 크고 중요한 일에 있어 하나님께서 그 천사를 보내실 것임
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늙은 종은 아브라함과 그렇게 오래 함께 하였으면서도 불구하고 그 사실
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사실을 아브라함과 같이 알았더라면 그 처녀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아도 되
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 참으로 이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은 개인적이
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함께 오랫동안 생활을 했다 해도,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에 대
하여 늙은 종의 지식으로 아는 것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알고 있으나, 그 종은 알
지 못하였습니다.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그러한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모두 다 깨달은 것
같으나, 실제 상황에이 전개되면 마음으로 깨달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머리로 아는 자에겐 아
무런 하나님의 역사가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비유에서, 보
통 때엔 다 같은 지혜로운 처녀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눈에 보기로는 두 종류의 처녀들 모두 신랑을 맞이
할 등을 가졌었고, 그들의 입으로도 모두 신랑을 기다린다고 말하였으니까요? 그러나 막상 신랑이 온다고
하니까 어리석은 처녀들의 등은 꺼져 갔습니다. 그 등엔 기름이 없었으니까요? 종교적인 삶은 이처럼 대단
히 무서운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루신 일들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
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이 그 사람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 어떠한 종교지도자들도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대변하거나 변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브라함
과 그 늙은 종이 늘 함께 하였지만, 그들은 같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
의 말씀에 대하여 같지 않았습니다. 지식으로는 같을 수 있었으나, 실제 상황에서 그것을 실제로 깨달아
경험한 사람만이 그것을 기억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
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과 맹세를 그 늙은 종에게 말하여 그 종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알
게 하였습니다. 8절에서 아브라함은 ‘만일 여자가 너를 쫓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
이 없나니’라고 늙은 종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종이 택한 그 처녀가 그 종을 따라나서지 않으면 그
일로 괴로워하지 말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종을 따라나서지 않는 그 처녀는 하나님
께서 준비하신 처녀가 아니기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한번 더 8절 하반절에서
‘자신의 아들이삭을 다시 그리로 데려가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자신의 고
향으로 데려가지 말라는 말한 데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그 고향 친족에
게서 떠나게 하셨기에 그 아들이삭이 그곳에 가기를 아브라함은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그 고향을 떠난 후 그곳에 돌아간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왜 그곳을 떠나라고 하셨
는가를 확실히 깨달은 자입니다. 그곳은 우상과 온갖 죄악이 들끓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그 곳에 그 아들을 보낼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그 종에게 그 아들을 그곳
으로 데려가지 말라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9절에서 그 종이 주인 아브라함의 환도뼈 곧 넓적다리 밑에 손
을 넣고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의 신부를 택하는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였습니다. 이로써 아브라
함과 그 늙은 종과의 대화가 마쳐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과 하
나님께서 나오게 하신 곳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변
화된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대하면서 그 말씀을 마음으로 확실히 깨달음으로 그러
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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