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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궤계
2007-07-28
8456건 조회
구원받지 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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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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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잃어버려져 있다- 누가복음 19장 10절
이 의미는 무엇인가?
2. 죄인이다 - 로마서 3장 23절
이는 본래 곧 태어날 때부터 죄인됨을 의미한다
3. 죽어 있다 - 에베소서 2장 1절
이 의미는 무엇인가?
4. 정죄를 받았다 - 요한복음 3장 18절
이 의미는 무엇인가?
5. 저주아래 있다 - 요한복음 3장 36절
이 의미는 무엇인가?
6. 어두움 안에 있다 - 고린도후서 4장 6절
이 의미는 무엇인가?
7. 불 못(지옥)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 요한계시록 20장 15절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성령 하나님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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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하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의 죄값을 지불하시게 하셨고 그 아들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하늘나라의 일들을 말씀하셨
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죄들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들을 그ㄸㅐ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후 승천하셨다, 승천하신 후, 예수님께서 성령하나님을 보내셨다
(맨처음 그림- 뷹은 삼각형)
2. 성령님께서는 사람 주변에서 그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그림 1)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그 분(예수님)을 받아들인 자(영접하는 자) 곧 그분(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예수님)께서 주셨으니‘라는 말씀을 보면 영접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가 나옵니다. 이로 보면, 우리는 영접이라는 일반적으로 아는 용어보다는 ‘믿는 다’는 성
경적인 용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믿는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모두 다 믿은 자인가? 아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로마서 10장 10절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라는 말씀과 로마서 10장 14절
에서 ‘듣고 믿는다’라는 의미의 말씀을 종합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믿는다는 의미의 말씀
이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마태복음 13장 19절에서 마음에 뿌리운 씨를 언급한다. 물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서는 “듣고 깨닫는 자‘에 대하여 언급한다.
마태복음 13장 23절과 19절을 연결하면 그것은 마음으로 들은 말씀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10장 10절과 14절을 마태복음 13장 19절과 23절에 적용하면 ‘믿는다’라는 말은 ‘깨닫는다’는
말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깨달아진 믿음임을 알 수 있다.

3. 마귀와의 관계
그 속에 누가 들어가 있는가?
마귀가 들어가 있다(두 번째 검은 그림)
왜냐하면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마귀를 “너희 아비”라고 부르셨으며 “너희가 마귀에게서 났다(태어
났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구원을 방해 한다.(그림 1)
그리고 마귀는 가인과 창세기의 뱀 그리고 가룟유다의 경우에 그 속에서 미혹하거나 그릇된 곳으로 인
도하였음을 보게 된다
가인의 경우- 가인이 첫 살인자였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마귀가 처음 살인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가인의 속에서 유혹한 실제적인 존재가 마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창세기에서는 뱀으로 나타나는 뱀이 요한계시록에서는 마귀로 언급된다(요한계시록 20장 2절- ‘마귀
요 사탄인 그 용 곧 옛 뱀을 잡으니’)
이는 그 뱀 속에서 이브를 유혹한 존재가 마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의 영 속에서 사람을 미혹한다(딤전 4:1)
마귀는 더러운 영이라고 언급된다(계 16:13)
마귀는 점치는 영(마술)으로 언급된다(삼상 28:8, 나훔 5:8))
마귀는 거짓말하는 영으로 언급된다(삼상 28:10, 요 8:44)
요한복음 8장 44절과 45절을 보면 마귀는 그 거짓말로 구원받지 못한 자로 진리를 믿지 못하게 한다.
에베소서 2장 2절을 보면 마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 표현되고 있다. 사람들이 구원받기 전엔 누구
든 그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으로 말씀한다.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서 “사탄도 자기를 빛(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사람들
을 빛으로 가장하여 유혹한다.
다른 사람을 미혹할 때 좋은 것으로 가장하지 않고서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구원받은 사람(영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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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아 믿어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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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받은 column 안의 모든 것은 영원토록 제거되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2. 그것들이 멀리 옮겨졌다- 히브리서 9장 26절, 시편 103편 12절
3. 죄들이 지워졌다- 이사야 44장 22절, 이사야 43장 25절
4. 구속되었다- 디도서 2장 14절
5. 정죄를 받지 않는다- 로마서 8장 1절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죄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6. 그의 죄들이 제거되었다- 시편 103편 12절
7.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죄들을 용서하셨다(시 85편 2절, 예레미야 31장 34절, 골로새서 2장 13절
에베소서 1장 7절),
과거가 용서되었다- 히브리서 10장 17절(그림 2)
8. 다시는 그 죄들을 기억하지 않으신다(히브리서 10장, 17절, 이사야 43장 25절 예레미야 31장 34절)
9. 모든 죄가 주의 등 뒤로 던져졌다(이사야 38장 17절)
10. 구덩이에서 건지셨다(이사야 38장 17절)
11. 죄악들을 담당하셨다(이사야 53장 6절, 베드로전서 2장 24절 )
12. 모든 죄들을 깊은 곳에 던지셨다 (미가 7장 19절)
13. 거룩함을 받았다(히브리서 10장 10절)

구원받은 자와 성령 하나님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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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령 하나님의 내재하심 (그림 3)- 로마서 8장 9-11절
2. 성령하나님께서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한 말씀의 능력으로 마귀를 그 영에서 쫓아내셨
다.
3. 영생이 있다; 요한일서 5장 13절
‘영생이 있다’는 어떤 의미인가? 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영생은 생명인데, 누구의 생명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생명이다.
생명이란 얻는 것인가? 아니면 태어나는 것인가?
예,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생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베드로전서 1장 3절 하반절에서 “그분께서(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죽은 자
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낳으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시며“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다시 내어낫다고 말씀하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3장 첫부분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께서 ‘거듭나라’고 하신 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에게서 난(태어난) 것이 ‘영’
이라고 말씀하는데서 우리 몸을 포함한 통째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태어
난 것이다.
4. 성령님께서 하시는 주된 일들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6장 8-15절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보이신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보이신다
-예수님의 것을 보이신다.
요한 일서 5장 10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믿는 자 안에 증언이 있고 그 증언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증언이다 하나님의 아들ㅇ르 믿는 사람 속에 증거가 있다- 증언이란 증거의 말씀이 있다는 말입니
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안에 말씀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안’이란 그 마음을 가리킵니다.

5. 구원받을 당시에 변화된 사람의 부분
사람들이 구원받을 때, 변화되는 부분은 어디인가?
사람의 가장 깊은 곳 곧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영’부분이다.
그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던 마귀는 쫓겨나고 성령님께서 들어가시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듯, 그 곳에 성령 하나님께서 들어감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새 생명으로 태어난 것이
다.
그 새 생명으로 태어난 부분이 바로 그곳이다.
그래서 사람이 구원받을 때, 변화된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인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때 몸과 그 혼도 변화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구원받을 때 몸과 그 혼이 변화 받은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구원받을 때, 그러한 현상이 몸과 혼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변화가 크게 몸과 혼에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변화가 그 몸과 혼에 작게 나타나거나 혹은 구원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그 몸과 혼
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물론 그 변화가 그 혼과 몸에 거의 나타나 보이지 않는 구원받은 사람도 그 깊은 영이라 불리우는 하나님
의 생명엔 움직임이 분명 있다. 그 변화가 크든 작든 혹은 거의 없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구원받
을 때 나타난 그러한 변화들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한 혼과 몸의 변화를 따라 구원을 분별한다면, 그 누
구도 구원받은 사람으로 보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받는 그 순간에 변화를 보인 사람도 어
느 기간이 지나면 예전의 그 모습이 그 혼과 몸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구원은 성령님의 역사로서 그 능력
이 워낙 커서 일시적으로 그 몸과 혼에 영향을 끼쳐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그 혼과 몸이 변화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그 혼과 몸이 세상의 지배 하에 있다.
왜냐하면, 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영’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변화가 그 깊은 속에서 일어났기에, 그 변화가 나타나지 아니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그 사람의 기질이나 혹은 혼 곧 자아의 지(知).정(情).의(意)에 따라 그 혼과 몸에 다타나는 일시적인 변
화가 각기 다르다. 그래서 사람이 구원받을 때, 그 혼과 몸은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단지 성령님의 역
사에 영향을 받아 나타난 현상이다. 사람의 그 혼과 몸은 마귀가 전에 사용해 왔듯이 구원받았다 해도 그
혼과 몸은 여전히 그러한 삶을 살게 된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받은 사람이 몸과 혼의 삶으로 갈등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태어난 하나님의 새 생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게 하는 일을 하시
는 동안 세상은 이전과 같이 여전히 그 몸과 혼을 지배하게 된다.

6. 그러나 여전히 그 혼 곧 자아의 지배를 받는다
자애(본능적인)자기 사랑, 자기 본위(self-love)
자기 의지. 제멋대로 굶, 완고(self-will)
자기 연민(self-pity)
자기 영광(self-glory)
자존, 자부심, 자만(self-esteem)
자기 추구(self-seeking)
이기주의(self-ishness)
사리(자기 이익/ self-interest)
방종(self-indulgence)
자기완성(자기의 모든 능력 발휘/ self-realization)
자급자족(self-sufficiency)
자기변명, 자기 옹호 (self- vindication)
자기만족, 자만, 독선(self- satisfaction)
자기 비하(경시/ self- depreciation )
자 의식(남의 이목을 꺼리는/ self- consciousness)
자아-자아-자아로 다져져 있다
자애(본능적인)자기 사랑, 자기 본위(self-love)
자기 의지. 제멋대로 굶, 완고(self-will)
자기 연민(self-pity)
자기 영광(self-glory)
자존, 자부심, 자만(self-esteem)
자기 추구(self-seeking)
이기주의(self-ishness)
사리(자기 이익/ self-interest)
방종(self-indulgence)
자기완성(자기의 모든 능력 발휘/ self-realization)
자급자족(self-sufficiency)
자기변명, 자기 옹호 (self- vindication)
자기만족, 자만, 독선(self- satisfaction)
자기 비하(경시/ self- depreciation )
자 의식(남의 이목을 꺼리는/ self- consciousness)
자아-자아-자아로 다져져 있다(self-self-self)
교만(pride)
염려(worry)
두려움(fear)
초조함(fretting)
기질, 노기(temper)
수군거리며 불평을 말하기(murmuring)
불평, 불만(complaining)
참지 못함, 안달복달(impatience)
질투(jealousy)
낙담(discouragement)
과민(sensitiveness)
거짓(lying)
맹세(swearing)
자신을 가련하다고 생각하는 태도('poor me' attitude)
우울(melanchoria)

7. 마귀와의 관계
마귀는 놀지 않는다.
마귀는 게으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에 대하여 너무 모르고 있다.
그리고 마귀가 무엇을 방해하려고 하는 가를 잘 모르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사탄은 120번 귀신은 328번이나 언급되지만, 우리는 마귀를 얼마나 심각하게 모르고 있는지?
닐 엔더슨 교수는 목회자 상담자, 신학교수, 그리고 사역자들을 조사한 결과, 마귀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마귀는 삼킬 수를 찾아 울부짖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닌다(벧전 5:8) 그리고 삼킬 자를 찾
는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자에게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귀가 우리를 삼킬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마귀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그렇다면 마귀가 우리에 대하여 왜 울부짖고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는가?
그 새 생명에 들어가거나 혹은 하나님의 생명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지배해온 그리고 마귀의 궤계에 익숙해져 있는 혼과 몸을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생명이 아니라 우리의 혼과 몸을 여전히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2장 3절에서는 우리가 육신과 생각(혼)의 욕망을 이루었다고 말씀한다.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우리가 공중의 권세잡은 자 곧 사탄을 따랐다고 말씀한다.
이 두 말씀을 종합하면,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였을 때, 사탄을 따라 혼과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았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계속 구원받은 후에도 혼과 몸의 욕망을 따라 살게 하는 삶을 살게 함으로 새 생명이 자라지 못하
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우리가 혼과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면, 새 생명이 자라지 못하게 된다.
새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기 때문이다.
혼과 육신의 욕망이 있는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 그 말씀을 깨닫기 까지 묵상하는
가?
여기서 울부짖는 사자는 무엇 때문에 울부짖는가?
그 혼과 몸의 욕망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참고 마태복음 13장-씨 뿌리는
비유) 마치 김 유신의 말이 그가 기생집으로 가지 않으리라고 작심한 후에도 여전히 기생집으로 향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새 생명이 속히 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원받은 순간 하나님으로 된 새 생명이라도 매우 작기 때문에 그 혼과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는 바울의 간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자신의 혼과 몸의 변화를 추구하였지만, 그는 한계를 느끼지 않았는가?

8. 바울은 로마서 3장 21절부터 5장 21절까지에서 자신이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
을 발견한다.
이는 그의 삶의 과정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혼 곧 자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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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의 변화는 생명의 자람이 없고서는 하나님께서 전체적으로 말씀하신 일 곧 혼의 변화는 ‘혼’에 현
실로 나타날 수 없다.
정신병 그리고 인격 장애 중에 무엇이 무서운 것인가? 인격 장애이다
인격 장애는 누구로 말미암은 것인가? 마귀가 아닌가?
마귀가 오랫동안 사람을 지배하지 않았는가?
정신의학에서 정신병은 치유할 수 있지만, 인격 장애는 거의 치유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이 치유되는 데, 그의 나이에 2배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인격 장애 곧 혼의 장애는 의학적으로 치유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인격 장애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각자에게 있다
그가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의학으로는 각자에게 있는 혼 곧 자아의 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의 말
이다.
새 생명의 성장이 있다면, 그러한 변화는 가능으로 바뀔 수 있다
노력으로도 혼 그리고 몸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아담과 이브, 그들이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귀
가 뱀 속에서 이브를 미혹할 때, 그 미혹에 넘어 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어찌 다를 수가 있는가?
그 차이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것이 되었으나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것이 되지 않았
기 때문에 그 혼이나 그 몸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은 언제나 바뀌거
나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이브(하와)는 그가 들은 말씀이 자기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이 달라
짐으로 그 혼이(살아있는 혼)이 두려움과 수치 그리고 책임전가를 하게 되었다(아담은 하나님과 이브에
게, 그리고 이브는 뱀에게)
영에 태어난 하나님의 생명의 성장이 있을 때, 혼과 변화가 있다.
우리가 어릴 때, 땅 따먹기를 하곤 하지 않았는가?
이는 힘의 논리이다.
힘이 강한 자가 상대를 지배하게 되어 있다.
이는 어떠한 조직이든 모임이든 그러한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뿌려진 말씀의 씨가 무슨 씨앗으로 비유되는가?
그렇다, 작은 겨자씨이다.
물론 우리가 아는 아주 작은 씨앗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임에는 틀림없다
그 씨가 어디에 뿌려지는가?
그렇다, 마음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어디인가?
혼인가, 아니면 영인가?
다른 것은 제쳐주고, 그 말씀은 누구의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말씀을 양식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그 몸인가? 그 혼인가? 그 영에 태어난 하나님의 생명인가?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 있다
그 생명이 하나님으로 태어난 새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에 따라 그 음식을 선호한다.
한국인은 아무래도 채식에 가깝다.
미국인은 아무래도 육식에 가깝다.
그와 같이 그 양식은 거기서 태어난 사람에게 그리고 그 부분에 관계가 깊다.
변화는 그 생명이 자라야 하기 때문에 그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그래서 벧전 2: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이 나온다.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든지 몸과 영 곧 하나님의 생명을 아시기에 사람을 위한 두 가지 양식에 대해 언급하셨
다.(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사람이 빵(몸을 위한)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
씀(영 곧 하나님의 새 생명)으로 살 것 이니라”고 말씀하셨다.

2. 생명이 성장함에 따라 혼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구원받은 사람의 생명이 성장을 한 만큼 먼저 그 혼 곧 자아가 변화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 영 곧
새 생명이 그 혼의 mind를 지배하고 우리의 행동을 야기하는 생각이나 명령을 주기 때문이다. 단지 혼 곧
그 지(知.)정(情).의(意)에 변화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림 8>의 붉은 화살이 ‘혼’ 곧 ‘자아’를 향해 침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마치 무화과나무의 익어가는 과정과 같고 유정난에서 병아리가 되어 나오는 과정과 같다.
모두 다 안에서부터 밖으로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밖으로부터 안으로의 변화는(곧 몸이 먼저 변화되고 나중에 혼이 변화된다는 변화) 대단히 무서운 것이다.
그것이 대단히 위험한 것은 그 몸의 변화를 사람들에게 강조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시될 수 있
기 때문이다.
이는 갈라디아교회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곧 행위로 돌아 간 것은 자신들의 몸의 변화를 추구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미 그 몸이 성화(sanctified)되었다고 말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혼은 어디까지나 생명의 성장으로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완전한 혼의 변화는 없기 때문이다

3. 바울 사도는 로마서 6장 13절에서 너희 자신(your-selves/너희 자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대하
여 언급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자기 자아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그대로 나타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그것에 대한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바울은 거기서(롬 7장 22절) 속사람 곧 영(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외적 사람(혼과 육
신)은 그렇지 못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7장 22절에서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
거워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사람의 어느 부분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 곧 새 생명이다. 새 생명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그 제자들의 영(spirit)은 참으로 원하나 그 육신(flesh)이 약
한 것으로 언급하셨다(마 26:41)
그리고 그는 그 드리는 일 곧 그 혼이 변화가 불가능함을 토로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로마서 12장에서 다시 하나님께 드릴 것을 언급한다.
로마서 6장은 바울사도가 자신의 의도적으로 그러한 삶을 살려고 한 것을 7장에서 알 수 있다.
자신의 혼의 변화로 로마서 12장에서의 다시 드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8장을 거친 그의 생명의 성장으로 곧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것을 깨달음으로 그의 혼이 변화된 것
을 나타내고 있다.
새 생명의 성장으로 혼에 변화가 먼저 나타난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는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씀한다.
생각이란 혼의 한 기능입니다.
생각을 새롭게 할(renewing)수 있는 것은 새 생명이 성장함으로 혼의 생각이 새로워집니다. 이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 변화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이 점에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일시적이고 다른 상황에 대단히 민감한 것이다.
그 수단은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말씀으로 그 생명이 성장하여 그러한 변화가 혼에게 까지 나타나게 되었을까?
갈라디아서 5장 24절과 2장 20절과 같은 말씀을 포함하여 들은 모든 말씀들을 묵상하고 깨달음으로 그 혼
의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그림 9)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다’는 것은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
다.
음식이 자신의 몸에 자기 것이 되는 과정과 같다.

4. 성령께서는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형성해(form) 가신다(고후 3:17-18)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4장 19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사람들 안에서 형성되기 까지(until Christ
be formed in you) 다시 수고하였다
바울은 형제. 자매들의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양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다시 말하면, 안에서부터 곧 영으로부터의 혼의 변화를 의미한다.

5. 마귀와의 관계
이 때 혼의 변화되기 시작함으로 마귀는 자신이 심어 둔 오랜 혼의 지배력을 상실해 가기 시작한다.
다시 말씀드리면, 새 생명이 말씀으로 자람으로 혼의 변화가 나타남으로 그 혼의 고질적인 것으로 생명이
말씀으로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러한 힘을 점차 잃어가게 된다.

6. 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몸을 통제한다:
혼의 변화로 부분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인 몸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지속적이거나 전체적인 것은 아니다.
ㄱ. 잘못된 쾌락(wrong pleasure)- 요일 2:15-17
영화, 춤, 카드놀이, 일요 스포츠, 비디오게임등 도박, 인터넷중독
ㄴ. 잘못된 관계-고후 6:14-18
세상적인 클럽, 세상적인 모임, 영적이지 못한 조직, 동우회, 구원받지 못한 무리, 친구등
ㄷ. 잘못된 습관들- 갈 5;19-21
담배, 음주, 문신, 영적으로 그 삶을 세우지 못하는 읽을 재료,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
여성과 남성의 부적합한 옷-신 22:5 습 1:8
몸을 헤치는 식습관-고전 10:31

사실 그러한 것들은 구원받은 사람의 몸에서 물러가야만(put away/제거되어야만) 하는 것이지만, 세상의
통제를 받는 가운데 그것을 없애고 수정하려는 노력이나 행위는 무위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오
랫동안 우리의 몸에 익숙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제거되거나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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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 16-1에서, 구원받았고 성령께서 내재하고 그 영향이 혼을 거쳐 몸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본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의 몸 부분을 소유하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어떻게 성령께서 우리를 소유할 수 있는가?
마냥 그렇게 성령의 힘으로 곧 강제적인 하나님의 힘으로 우리를 소유하시려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요나 강제력 행사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다른 수단으로 우리의 혼과 몸을 소유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수단이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우리의 이해를 따른 새 생명의 자람으로 그리고 혼의 변화를 통해 몸에도 변화가 나
타나기 시작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옛 말을 보면 몸의 변화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를 알 수 있다.
그러한 몸의 변화가 혼의 변화 만큼이나 어렵지만 혼의 변화로 가능하게 된다.
2. 초록색에서, 우리는 세상이 인간에게 다섯 가지의 감각(five senses/五感) 혹은 문들이 닫혀 있는 것
을 본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지만, 몸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3.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은 후에, 자신의 속에 성령님이 계시고 성령님의 역사로 거듭난 생명이 자라고 있
음을 알아야만 한다.
로마서 8장 9-11절, 베드로전서 1장 3-5절

4. 구원받은 사람은 원칙적으론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시고 그 몸은 성령의 집인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사시는 그 몸을 돌보신다.
하나님의 것이니까 그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고전 6:19-20, 고전. 3:16-17, 롬 12:1-2, 갈 1:4
그러나 그 말씀이 그대로 나타나기 위해서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의 자람이다.
생명의 자람이 없고서는 하나님께서 전체적으로 말씀하신일은 나타날 수 없다.
그래서 벧전 2: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이 나온다.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든지 몸과 영 곧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곤 하셨다(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사람이 빵(몸을 위한)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영 곧 하나님의 새 생명)으
로 살 것 이니라”고 말씀하셨다.

5.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로마서 8장 28-29절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duplicate)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지 과정은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여러 과정들을 거쳐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른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그 목적이 완전하게 그 혼과 몸에 나타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6. 그림 5에서 보듯, 우리 자신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
께 죽으셨다는 것이 보여져야 한다
그림 5에서, 삼각형 안에 있는 세 개의 원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인간을 나타낸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로마서 6장 6절, 갈라디아서 2장 20절
위의 성경구절들이 가리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어떠한가?
실제로는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고,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현상이 그 육체에 나타나
는 것은 그 혼의 변화와 갚은 관계가 있다.

사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혼이나 몸속에서 물러가야만(put away/제거되어야만) 하는 것이지만, 세상의
통제를 받는 가운데 그것을 없애고 수정하려는 노력이나 행위는 무위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오
랫동안 우리의 몸에 익숙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제거되거나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7. 성령 하나님께서 세상과 관계하는 그 몸을 인계받아(접수해) 그 몸을 통제함으로서 이러한 것들이 우리
의 실제의 삶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말씀이 있다 -롬 6:12-13 이 말씀은 ‘하나님께 자신(자아/your-Self)
을 드리라’고 언급한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혼과 몸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한다. 그
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자신을 드릴 수 있는 능
력이 되어야 드릴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그
힘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령님에 의하여 자라난 그 생명의 성장정도에 달려 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
은 그 내용에 있어선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야만 성령님께서 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말씀하지만, 그 실제의 효력에 있어선 도치법적인 형식 즉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새 생명이 자라야만 자신
을 드릴 수 있다는 의미의 말씀이다.
(바울은 6장에서 자기 자신(자아/your- Self)와 그 몸의 드림 곧 변화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8, 마귀와의 관계
마귀는 점차 구원받은 사람의 몸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가게 된다.
새 생명의 성장에 따라( 이 말은 성경 지식이 많아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혼 곧 자아가 변화된 결과,
그 몸도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생명이 자란 만큼 그리고 그 혼이 변화된 만큼만 그 몸이 변화되는 것이다.
마귀는 이제 그 몸으로 인하여 새 생명이 자라는 것을 점차 방해 할 수 없게 되어간다
9.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 몸의 변화를 고백하고 있다(로마서 12장)
그 생명이 성령님과 말씀으로 성장함에 따라 그 혼이 변화하게 되어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그 몸도 행위로
가 아니라, 그 몸도 변화된 것을 간증하고 있다 그 몸의 변화는 생각이 새롭게 됨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로
마서 12장 2절에서 밝히고 있다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언급한다


성령 하나님의 구원받은 사람의 몸에 대한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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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 7에서 붉은 색은 성령님을 가리키며 성령님께서 구원받은 사람의 몸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를 나타
낸다.
그는 이때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롬 8:2)
2. 이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보았고 그 죽음과 동일한(in identification in that
death)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였다
롬 6:6에서 옛사람이란 죄 속에 있던 자신을 가리키며, ‘the body of sin might be destroyed '란 ’힘없
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현재 우리의 죄의 몸이 ‘힘없는 상태’가 되어 있는가? 이는 우리 몸이 힘
없는 상태가 될 날이 있음을 가리키며, 그 몸의 힘없는 상태는 새 앵명이 강해짐으로 가능하다. 물론 그
변화 곧 몸의 변화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과정- 성령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새 생명이 자
라게 된다- 혼에 변화가 오게 된다(곧 그 혼이 새 생명의 자람에 따라 점점 더 힘을 잃어 감으로)- 혼의
변화가 있은 후에 그 몸의 변화(몸의 힘이 점점 더 약화됨)가 시작되게 된다.
갈 2:20 갈 1:4
3. 이 사람은 그의 몸에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성령의 전임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시는 분 곧 하나님 아래 있어서 그 몸이 더렵혀지지 못하게 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한가?
이러한 상태는 역시 속사람의 상태가 먼저 성장함으로 일어난 것이다.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구원받은 사람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그렇다면 표면적으로 나타난 말씀 뒤에는 속사람이 성장하여 더 큰 힘을 얻어 그 겉 사람을 통제하는 것
을 볼 수 있는 말씀이다.
고전 3:16-17
헛된 영광을 욕심내지 않고,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5:25-26(참고 살전
5:23)
4. 이 사람은 새 생명의 성장으로 혼이 변화함으로 하나님께 몸을 드린다(yielded)
롬 12:1
5. 이 사람은 이제 “나는 이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하고 말한다(그림
7)
갈라디아서 6:14
6.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주님께 당신의 몸을 한번도 드린 적이 없다면(never surrendered), 지금 멈추
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일이 계속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몸을 드리는데 있어, 무엇이 작동해야 하는가?
그 마음이 움직여야 하지 않는가?
이로 보면, 몸이 드려지는 일에 있어, 그것 역시 그 몸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을 드릴만큼 성
장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무슨 결심이나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물론 결심이란 것이 그 생각을 잠시 바꾸는데 도움은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하는 그러한 몸의 드림은 일어나지 않는다.
'surrender'라는 용어는 ‘양도하다’ 혹은 ‘내맡기다’라는 의미가 있다.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맡긴다’ 혹은 ‘양도한다’라는 말은 예사스런 말이 아니다.
어떠한 물건을 양도하는 순간부터 그 소유권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양도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그 몸의 소유권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 일이 과연 실제로 쉽게 일어나는 일인가?
바울 자신도 상당한 그 새 생명의 성장이 있고나서 그러한 말을 간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처음엔 하나님
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였다. 얼마동안 시간이 흐른 후, 바울은 갈등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갈등을 하기
전에 바울도 로마서 6장에서 하나님께 지체와 혼을 드리는 일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드
림이 실행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어 갈등을 하는 것이었다. 곧 속 사람과 겉 사람간의 갈등이었다. 그 갈
등 후에, 그는 한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속사람은 속사람이고 겉 사람은 겉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이 바울
의 말은 마치 그 상태를 방관하는 듯 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 속사람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난 자
신의 새 생명의 성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하려고 결심을 하기
도 하였지만, 그 일이 좌초되는 경험을 여러 번 혹은 어떤 사람들은 수십번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일은 아
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상태에서는 점점 더 멀어져가게 되고 그 어떤 것도 하려
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어떤 몸의 변화나 승리는 그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


구원받은 자가 세상에 변화를 드러낸다
====================================

1. 그림 11은 그러한 상태를 나타내 보인다(요한복음 7장 38-19절)
2. 시편 기자 다윗은 시편 62편 5절에서 “자신의 완전함(perfection)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말하
고 있다.
이 완전함이란 그의 생명의 완전함을 의미하며, 그 완전한 생명이 크게 성장함으로 그 자아와 함께 혼이
상당히 변화되어 성령 하나님께서 그 자아와 몸을 많이 통제하신다
3. 생명의 진전(영적 진전)이 이 삶 속에 있어, 자아가 이제 하나님의 영에 집중된다. 자아의 의식도 이
제 그리스도의 의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자기 연민이 이제 그리스도의 연민이 된다. 이 사람 안에 있는 모든 변화와 아울러 그는 성령께서 자신의
몸을 관리하시기를 원하며, 성령님의 인도와 깨우치심을 따라 이 사람은 자신의 몸을 적합하게 사용하는
일에 있어 하나님께 책임질(대답할/responsible) 수 있게 된다
4.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을 그 생명이 깨달음으로 나타난 현상이다(고전 15:10.
엡 4:17-32, 시편 15편)
그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이 그의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자이다. 그는 그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이 얼
마나 더럽고 죄악을 짓고 있는 가를 발견한다. 그때 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그날 그날의 죄들을 십자가에
서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으로부터 그는 자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데 되고 그러한 생활을
통하여 그는 은혜가 풍성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은혜가 넘침을 깨달아 풍성한 은
혜 가운데 산다(딤전 1:12-14 고린도후서 8장 1-2절)
사람들은 은혜를 잘 아는 것 같지만, 그 은혜를 모른다.
이는 로마서 1장 21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감사하지도 아니하며“라고 말씀하는데서 나타나고 있다.
은혜를 모르니까 감사치 않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열문둥병자를 고쳐주셨을 때, 몇 명
이 감사하러 왔는가? 한 명이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고침을 받은 아홉 문둥병자의 감사를 받기 원하심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비단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서
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예, 성경의 일만 달란트 빚 진자와 그에게 100데나리온 빚 진자) 17명의 목숨
을 건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중에 몇 명이 감사를 표하였을까요? 단 한명의 어린 소녀 뿐이었다.
5. 그는 그의 생명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생명임을 깨달음으로 그 혼과 몸도 세상으
로부터의 분리된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이 같은 변화가 그에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에야, 그는 어떠한 값(희생/cost)을 치루 고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며 그것을 하려 한다
(시 15편 4절)
변화된 다윗은 자신이 약속은 것이 자신에게 해로울 찌라도 변경하지 않는다
6. 몸의 오감의 문이 안으로부터 열려 잇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한 축복의 통로로써 그들을 사용하신다
이제 십자가가 비어 있음을 주목하라. 그는 이제 십자가 안에서 영광스러워 한다.
그에겐 이제 십자가가 보인다(그림 )
십자가 때문에 그가 모든 얽매인 것들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요 8:36절- 이때부터는 자유가 있다
7.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로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님을 깨닫아 생명이 자라고 혼이
변화하고 그 몸이 변화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골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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