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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와 구별
200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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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와 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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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와 구별이라는 단어 중에 과연 어느 단어가 맞을까? 그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오늘날을 혼돈의 시대로 규정한다. 그 혼돈이 각 분야에 상존
하고 있지만, 언어에 있어 그 현상이 심각하다. 특히 기독교내에서 사용되는 언어 곧 단어의 혼돈은 더더
욱 심각하다. 오늘의 주제를 다루면서 우리 안에 그 같은 혼돈을 더욱 더 느껴,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
이 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성화라는 말을 자주 말하고 들으면서도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가운데,
성화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성화란 단계에 이르기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인
들이 바라는 그 같은 성화는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소위 성화(so-called sanctification)'에 이르고자
하는 그들의 방식은 올바른 것일까? 우리에겐 수많은 의문이 있다. 우리는 이 지면을 통하여 성화의 오해
와 구별의 진리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성화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성화란 국어사전적으
론 “신성한 인격을 완성함”이다. 즉 국어사전은 신성한 (거룩한) 인격의 완성된 상태를 성화로 보고 있
다. 그리고 성화에 대한 기독교의 정의 역시 “신성화”로 국어사전의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게
다가 한국의 문화가 성화라는 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거룩할 성(聖)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를 즐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화라고 말하면서 추구하는 그 성화는 성경의 의미와는 큰 차이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sanctify', 사람들이 소위 ‘성화 한다’고 번역하는 이 단어는 국어사전이나
기독교적 기존관념과는 달리 ‘구별 한다’는 의미만을 지니고 있다. 영어로 ‘sanctify'의 뜻은 ‘set
apart'(구별하다) 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문화나 의식은 의례 잘못된 선입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
면 성경은 성화라고 부르는 용어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는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그리고 평강
의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하게(wholly) 거룩히 구별하시기를 원하노라”(흠정 역) 고 말씀한다. 개역
성경의 그 구절은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개역성경의 말씀 곧 “온전히 거룩
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은 흠정역의 “거룩히 구별하시기를”라는 말씀 보다 더욱 더 심각하다. 거룩히 구
별하신다는 말씀이 거룩하게 하신다는 말씀보다 더 성경의 의미와 가깝다. 그러나 두 성경번역 모두 공통
적으로 ’거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소위 성화라는 말로 사용되는 단어의 본래의 의미로 볼
때, 오로지 “구별 한다”로만 번역되어야 한다. “And the very God of peace sanctify you wholly(바
로 그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말씀에서 “거룩히”라는
말은 삭제되어야만 마땅하다. 영어 sanctify 라는 용어 속에 ’거룩‘ 이라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거룩’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번역자들이 그들의 관념에 따라 삽입한 것이다. 이로
보면 언어의 혼돈이 우리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언어의 혼돈
은 누가 일으킨 것일까? 여러 언어로 나누신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 언어에 대한 혼돈은 사단에 의한 것이
다. 아시다시피, 사단은 사람을 창조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로 특히 하와로 말씀에 대한
혼돈을 야기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지 않았는가? 이와 같이 사단은 그 언어의 의미를 혼돈시켜 사람들
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sanctify(구별한다)"라는 단어는 미래형이 아
니라 원형 혹은 현재형이다. ‘(거룩히) 구별하시기를’이라고 한다면, 이는 점진적인 미래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원형 혹은 현재형이기에 이미 구별된 상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성
화에 이르려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일 소위 성화가 하나님께로 구별되었다는 의미라면 별 무리
는 없지만, 이 “거룩히”라는 용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 하면, 높은 수준의 도덕적 경지
에 이르러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오해는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에 깊이 뿌리내려 오랫동
안 잘못되어 왔다. 이로 볼 때 소위 성화란 구별을 의미하며, 그 구별은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예수 그리
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는 새 생명으로의 출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완성된 것이
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구별된 사람이다. 하나님께 로의 구별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로
서 “하나님의 부르심 그 자체”에 있다. 우리를 부르신 그분은 어떠한 분이신가?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심으로 나는 이미 구별된 자이다.
이는 사람의 노력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이미 나는 누구에게
로 구별되어 있는 자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
이기에 구별되었다고 말함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내가 그것을 알고 있는 가의 그 여부와는 상관없이, 나
는 하나님께로 구별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막연하게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창조를 확실히 알아서 하나님은 창조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생각
을 한번 해 보라!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온 땅에 가득함(사 6:5)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어찌 오늘날과
같이 살겠는가?, 오늘날의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창조를 인식하고 매일 살며, 하나님을 섬기는
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인식하고서 생활한다면 그 생활이 지금과 얼마나 더 달라지겠는가? 하나님의 창
조하심을 안다는 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께로 구별된 자라는 것을 아는 것이며, 구별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활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새 생명으로 낳으심으로 나는 이미 구별된 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생명으로 구별된 자
임을 알 수 있다.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낳으사” (벧전 1장 3하
반절). 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난 것 보다 더 완벽하게 하나님께로 구별되게 할 것이 무엇인가? 그
래서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한 구별이 아닌가?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님을 말씀하셨다.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은 구별된 자임을 나타낸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속하심으로 나는 이미 구별된 자이다.
나를 구속하셨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셨
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 13)라는 말씀에서, 모든 죄들의 용서를 통하여 우리
는 죄로부터 구별된 자임을 나타내신다. 히브리서 10장 10절에서도 “거룩”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있지
만,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고 번역되어 있다. 구별이 이미 되어 있는 과거의 상태로 나타나 있
다. “구별되었노라”라는 용어는 sanctified이다. 이 단어는 과거 분사 형으로 수동태의 형식이기도 하
다. 수동태형의 구별이란 무엇을 나타내는가? ‘구별되었다’란 자기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분
에 의해 구별되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 다른 분은 우리의 주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히 10:10)는 말씀
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으로 구별된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으로 우리가 구별된 것인가? 예수님의 구속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께
서 십자가에 단 한번 달려 죽으심으로’ 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오래 전에 예
수님의 죽으심으로 벌써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구속하셨다”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어떻게 되어 있
는가? 하나님께로 이미 그리고 충분히 구별되어 있다.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에서 우리를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구별하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께 로의 구
별은 극소수의 사람에 국한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일을 깨달을 때, 자신이 구별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의 큰 전환기적 경험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경험되어지는 것이
다. 이는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practical) 것이다. 이는 신학적인 입장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것
이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과 말씀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통하여 ‘나 자신이 이미 구별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역사가 두 번째의 큰 전환기인 것이다.
그 말씀을 깨닫는 큰 능력의 경험을 가져서, 큰 확신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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