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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중보의 이유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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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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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건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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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데살로니가전서 1장 1 -3절
제목: 감사와 중보의 이유들
서언: 지난주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을 통하여“더 높은 감사”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감사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것들과 몸과 물질적인 것들입니다. 더나아가 우
리가 한 감사는 말씀을 깨달음으로 구원에 이른 그 구언과 용서에 대한 감사를 간간히 해 오는 것이었습니
다. 오늘 더 높은 것들에 대한 더 높은 감사는 우리가 가쁨 해오던 감사의 것들을 포함하는 것이지만 마태
복음 23장 23절 말씀에선 공의와 긍휼과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모두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
터 값없이 받은 것들입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의이며, 긍휼이란 단순한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용서이
며, 믿음 역시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1장 42절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을 말씀하십니다. 모두 다 드릴 때에 함께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 감사란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
나 이러한 것들과 함께 드리라는 말씀은 그 선물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드릴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며 우리
의 생호라 속에서 어떠한 감사함으로 생활해야 할 것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
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감사와 중보의 이유들”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
살로니가에 있는 형제. 자매님들을 인해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그들을 위해 중보드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지속적인 감사와 중보의 이유들 중 하나인 믿음의 행위(work)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도할 때에 너희에 관하여 말함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눈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믿음의 행위를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니”
너희 믿음의 행위란 무엇입니까?
- 먼저 생각할 것은 “너희”입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너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아버지의 눈 앞에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너희는 단순한 몸을 지칭하는 것입니까?
아버지란 곧 그 속에 잇는 하나님의 생명을 두고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 그렇다면 누구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너희 곧 하나님의 생명의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결심의 믿음이 아니라 생명에서 나오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조차도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곧 성령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결심에는 어떤 행위나 일도 나오지 아니합니다.
- 위로부터 온 믿음엔 무언가가 우리 혼과 몸에 나타납니다.
본문에서는 “행위”라고 언급하지만, 영어론 “일(work)”을 나타냅니다.
확실한 것을 본 그 믿음에서 일이 나오게 됩니다.
이 일은 자연스러운 믿음의 그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누구에게나 바로 나타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 생명이 자라고 그 믿음이 자란 그 결과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인 것입니다.
그 믿음의 결과인 일이 나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할 일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그 믿음의 일이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종교인들의 말과는 다릅니다.
2. 지속적인 감사와 중보의 이유들 중 하나인 사랑의 수고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도할 때에 너희에 관하여 말함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눈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사랑의 수고를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니”
- 사랑도 역시 하나님의 생명에게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 사랑의 수고는 그 입은 사랑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엔 힘이 들고 어려운 것입니까?
이것 역시 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수고엔 아까운 것도 없고 또 사랑의 수고는 결국 그 수고로 말미암은 기쁨을 동반하
는 것입니다.
- 누구를 위한 사랑의 수고일까요?
하나님의 생명인 하나님의 아들들의 혼과 몸을 위한 수고인 것입니다.
3. 지속적인 감사와 중보의 이유들 중 하나인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도할 때에 너희에 관하여 말함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눈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니”
- 여기서 말씀하는 소망이란 어떤 것입니까?
막연히 기다리는 그러한 소망입니까?
아니면 무엇입니까?
성령님께 보여주신 것이나 말씀이지만 현제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에 대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 소망은 확실한 소망으로서 그 소망으로 힘을 얻을 수 있는 소망인 것입니다.
- 그 소망엔 무엇이 필요합니까?
인내가 필요합니다.
왜 인내가 필요합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비꼼이나 핍박이나 환난이 있기 때문에 여기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 인내 역시 넉넉히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소망은 확실히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언: 사도들과 형제들이 데살로지가에 있는 형제 자매님들을 인해 항상 감사하고 또 그들을 하나님께 말함
은 그 생명의 믿음의 일들과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 세 가지의 것들
이 나타나는 문제는 그 본 것이 확실한 가의 여부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중보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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