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번글
창세기 13장 1-13절
200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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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오늘 여러분과 함께 창세기 13장 1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브람이 결국 애굽으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었
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가 의도적으로 들어갔던 그 애굽으로부터 나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
굽으로부터 나올 때, 아브람은 그 아내와 롯과 함께 그 모든 소유 곧 재산을 가지고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연합하며 그 길을 걸으려면 애굽안에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애굽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애굽이 가리키는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따를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거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으며 그렇게 처
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든지, 얼마나 섬겼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읽었
든지, 그러한 것들과는 상관없이 세상속에 산다면, 그리고 그 세상 속에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더 이상 그 애굽에
살도록 허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얻은 육축과 은 금으로 그 재산이 풍부하였습니다. 여기
서 우리는 그가 애굽왕바로에게서 얻은 것들로 많은 재물을 얻음으로 풍부해진 것과 같이 우리도 세상과 타
협하거나 세상과 같이 살므로 그 세상으로부터 부귀 영화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
을 하신 후에, 마태복음 4장 8절과 9절에서 마귀로부터 받은 시험에서도 나타났듯이, 아브람도 그 세상으로
부터 세상과 더불어 살므로 은금을 얻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8절과 19절은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
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엎드려 절하면 천하 만국의 모든 것을 주
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마귀도 자신에게 절하고 자신을 경배하면 여러 가지를 줄 수 있음을 여기
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잘되는 것은 꼭 하나님에 의해서만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
다. 마귀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게 될 때, 처음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들을 줍니다. 사람도 자신
이 좋아하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하고 또한 무언가를 주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은 마귀가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귀가 주는 것과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과는 차잇점이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을 경배하면 그 결과로 무언가를 주시는 것이지
만,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성령님으로 순종하면 그 부수적인 것으로 무언가를 겸하여 주
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황금만능풍조 하에서 자라고 황금만능풍조에 젖어 왔기에 어떠한 방법으로든, 어
떤 수단을 사용하든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원칙과 원리 그리고 과정을 무시
해 왔습니다. 이는 마귀의 유혹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무조건 세상의 방식으로라도 돈만 벌면 된다
는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
서 돈을 벌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더 중요한 영혼을 잃어버립니다. 서경에 어리석
은 농부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해, 곧 그 해 소출이 너무나 풍성하였던 큰 풍년이 찾아 온 그 해
에 그 농부는 자신의 영혼에게 너무나 많은 수확으로 인하여 지금의 창고를 헐고 더 큰 창고를 짓고 거기
에 자신이 거둬들인 농산물을 쌓아두고, ’ 내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물질을 풍성함을 따라 하나님을 잃어 버렸고 자신의 영혼이
무엇인지도 잃어 버렸습니다. 이를 통하여 그는 그 영혼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무엇을
먹고 마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몸이 아닌 자신의 영혼이 무슨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잃어 버렸을 뿐만아니라 그 영혼을 어떤 육체로 비하시켰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 영혼은 사람의 몸보다 더 귀합니다. 그 영
혼은 재물보다 명예보다, 권력 보다, 사람의 육신보다 더 귀합니다. 그러나 그 농부는 사람의 영혼이 얼마
나 귀한 것인가를 잃어 버리고 마치 자신의 배를 gi하여 말하듯이 그 영혼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
나님께서는 그 농부를 향하여 ’어리석은 자‘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
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돌아가면 사람
의 몸이나 그 준비하여 얻은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 영혼을 잃어버리면 결국 하나님도 잃
어벌게 됩니다.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속여 많은 것들을 얻었고 자신의
몸은 안전할 수 있었지만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영혼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자신
의 의도와 계획대로 애굽을 향하여 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방식대로 가나안 땅
에 흉년이 들었기에 애굽으로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항면할 수 있습니다만, 그는 애굽으로 내려 가기
도 전에 그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아내의 아름다움을 인하여 자신이 애굽에서 죽
임을 당할 까 것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내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였습니다.그 거짓말로 그
는 그 아내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로부터 후하게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마귀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노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내를 세상 곧 애굽에서 잃어 버린 것입니
다. 자신의 아내는 성경에서는 한 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이 얼
마나 참담한 일입니까? 결국 그는 애굽에서 얼마나 그 마음이 괴롭고 답답하였겠습니까? 매우 실제적으로
그 흉년을 벗어나고자 하느 당영한 생각이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아내를 잃어 버리고 자신의 하나님을 향
하는 마음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슬프고 참담한 일입니까? 마귄느 이렇게 우리를 미혹
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가정형편이 어려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등한시 한다면 하나님과 내 영혼을 동시에 잃어버려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도 잃어 버리게 될 것
입니다. 물론 약간의 돈이나 물질은 얻을 수 있겠습니다만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치 못하게
하며,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으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마귀는 사
람들에게 선과 악 그리고 사람의 생각과 눈에 좋아 보이는 것들을 미끼로 우리들에게 던져 줍니다. 그때 대
부분의 사람들은 그 유혹의 미끼에 걸려들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원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다
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어렵습
니다만 세상에 빠져 들어가게 되면 그 삶은 그 의미도 잃어버리고 그 상태는 참담해 질 것입니다. 아브람
은 애굽에서 그러한 부는 누렸지만 그는 사람이 살 의미를 잃어벼렸던 것입니다. 그 자신이 애굽에 있었고
그 아내는 바로의 궁에 있었고, 그의 마음은 거짓으로 짓눌려 있었으며, 그 자신의 마음은 그야말로 괴로웠
을 것입니다. 드러나 그는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올 수 없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있던 아브람을 건져내셨습니다. 아브람의 힘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육신으로 사는 가운데 있다면 우리 힘마능로는 거기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궁전에 재앙을 내리셔서 바로로 하여금 그 문제를 깨닫게 하셔서 그 애굽에
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
휼 때문입니다.
13-2
안녕하십ㄴ까? 창세기 13장 3절에서 아브람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애굽에서 나와 벧엘로 갔습니다. 지난 주에 그가 애굽에서 나온 것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곧 세상에
서 나온 아브람에 대하여 보았는데 오늘은 그가 애굽에서 나온 후의 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애굽에
서 나오게 되자 그가 간 곳은 벧엘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아브람이 벧엘을 떠나 애굽으로 갔었는
데 애굽에서 나와 그가 간 곳은 다름아닌 벧엘이라는 장소였습니다. 그가 결국 벧엘로 오게 되었던 것입니
다. 그는 결국 시간을 낭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하나님앞에서는 필요하였습니다. 그 과정을 통하
여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어떠한 곳이며 자신이 그 애굽안에서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었는가를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애굽이 가리키는 세상을 그는 실제로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그 곳에 가 보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가지 못하게 하면 더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브라
함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가고자 하는 마음 곧 의도를 갖고 남쪽 곧 애굽으로
내려 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나타나 그 곳에 있으면 어떠한 축복을 할 것인가를 아브람에게 말
씀하셨지만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은 가려고 하는 곳이 있다면 아무도 이를 말릴 수
없습니다. 아브람이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애굽이 어떠한 곳인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애굽
의 우상숭배, 성적타락, 자연숭배등 갖가지 추악한 일들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거기서 나온 아브람은 자
신이 처음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처음에 장막을 쳤던 곳으로 갔습니다. 곧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창ㅅ세기 13장 4절에서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
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애굽 안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
습니다. 그러한 말씀이 성경에 없습니다. 애굽안에서는 이와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가 거기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애굽
에서 나오고 나서야 부르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이 없습니다. 세상 밖에 나와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세상 박에 나간다는 말은 세상 밨으로 우리
가 나간다는 육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역사하심
곧 나 자신이 모든 죄의 사함을 받았다면 세상 속에 살아도 세상 속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은 곧 세상 밖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이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에는
그는 그 세상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d우리 몸이 세상 속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 생명은 하
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생명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깊이 깨달아 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
게 되고 그 하나니므이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습관적으로 부르는 종교인의 하나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형식적으로 혹은 습과적으로 너무나 많이 부릅
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도 너무나 자주 습관적으로 입만 열면 ‘주여 주여’ 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의 이름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는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
다. 이는 그 이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의미없이 부르는 것이 아
니라 의미있게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미있게 불렀습니다. 그는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더 정확이 번역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였
다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청하였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에서 부르다라
는 말은 영어로는 call on 입니다 이 말의 의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다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
러 청하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부른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그가 한 것이 있었
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
께 무언가를 청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사실상 기다리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브람은 여기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진정한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와 그가 처음에 천막을 치
고 단을 싸았던 곳에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함으로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니므이 보호와 인도하심 아래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동행하
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이상 괴로워 할 필요
도 없었습니다. 여기선 더 이상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아내로 하여금 그가 거짓말을 가르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러한 때에 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좋을 때도 문제가
찾아듬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목자들과 록의 목자들이 서로 싸우는 일이 잦아들었습니다.
자주 이들이 다투었습니다. 아브람이 그 문제를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싸우게 된 동기는 장소가 좁아서입니다. 열왕기 하 6장 1-7절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 있었습니다. 엘
리사와 그 생도들이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문제는 모르는 가운데 생긴 것이 아
니라 공개적으로 생긴 문제였습니다. 그 문제는 다름아닌 많은 사람들 곧 선지자들의 아들들이 엘리사에게
로 몰려들므로 해서 생긴 문제 였습니다. 당시에 살았던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무슨 재산을 모아서 그리고
형편이 넉넉한 가운데 하나님의 일들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그때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길로 먹
이시고 입히시는 생활이었습니다.. 혹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었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드리
는 것들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지자들이 죽거나 병들게 되면 그 아들들이 현존하
는, 당시에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선지자들에게 몰려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선지자여서 일뿐
만 아니라, 그들이 생활을 꾸려나갈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중엔 그 아버지 선지자의 영향을
받아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섬기고자 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엘리사선지자에게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거주하던 장소가 너무 좁았다는데 있었습니다.
우리성경에는 그냥 ‘좁으니’라고 좁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흠정역성경은 우리에게 ‘너무 좁
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장소가 그들에게 너무 좁았습니다. 그 장소가 그들에게 너무 좁으니까 자연
히 무슨 문제가 생깁니까? 육체적인 부딪힘이 있습니다. 그들의 몸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서로 불편을
느끼고 그것이 심해지면 서로 싸우게도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장소가 너무 좁아서 그들에게 무슨 문제
도 생기게 됩니까? 예, 그들에게 혼적인 문제도 생깁니다. 즉 그들의 생각이 너무 좁아서 작은 일에도 불평
과 원망 그리고 아우성을 지르곤 합니다. 그들이 엘리사선지자에게 몰려 든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일
입니까? 그러나그에 이어 문제가 생겼듯이 이 아브람에게도 문제 가 생겼는데 그 장소가 좁아서 그들의 종
들이 서로 싸우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 종들이 서로 싸우니까 자연히 아브람의 마음이 상하고 조카 롯
의 마음도 상하였을 것입니다. 겨우 하나님의 평강을 찾은 아브람에게 장소로 인한 문제가 생겨 그 마음이
편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생가가여
야 할 것입니다.이는 로마서 5장의 말씀과같이 환난은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
러.....
13-3
안녕하십니까? 창세기 13장 5절에서 7절에서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땅이 그들
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고 말씀하
였습니다. 아브람이 그 조카 롯과 함께 동거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은 목축업자였습니
다. 롯도 목축업자였습니다. 양과 소들도 많이 기르고 있었음을 본문을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많다는 말씀을 통하여 그들은 많은 양들과 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들이 서로 다투었던 것
입니다. 그들의 종들이 서로 다투게 되어 지난 주 말씀과 같이 그 주인인 아브람과 롯의 마음도 여러번 상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사람들이 많아지거나 재산이 많아지거나 그 무엇이든 많아지게 되면 문제들
이 생기고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은 그때나 오늘날이나 동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우리가
직면하면서 재산이든 사람이든 많아져도
하나님에 의해서 많아져야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다투게 된 이유들이 성경본문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거한 땅이 좁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에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
다’고 말씀합니다. 그 땅이 좁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땅이 좁아서 그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땅이 그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땅에 그들에게는 매우 좁은 제한된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지난
주에 잠깐 보았지만 그들이 거주하는 곳이 좁아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좁다는 것은 공간의 한계를나타냅니
다. 사는 곳이 좁으면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을 우리는 늘 보아 왔습니다. 게다가 그들만 그 곳에 산 것
이 아니라 그곳에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사람들도 함께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그러한
다툼이 지속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다툼이 지속되면 아브람의 종들과
롯의 종들간의 다툼에서, 아브람과 롯의 다툼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브람과 롯의
감정이 상해 그 관계가 단절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더 이상 그들의 종들이 싸우게 해서는 아니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로 보면 아브람은 전체적인 그들의 관계를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
은 그 조카 롯ㅇ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8절에서 먼저 ‘우리는 한 골육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아브람은 먼저 다투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나
롯이 한 골육, 곧 형제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 목자난
네 목자가 서로 다투지 못하게 하자 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브람은 롯에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여고 하였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여야 할 이유도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람은 곧이어 9절에
서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느 좌하리라’
고 말하였습니다. 아브람은 그 문제 앞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롯으로 하여금 먼저 선택
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택의 대상은 땅이었습니다. 아브람은 그 땅의 좋고 나쁨에 따라 그 땅을 선택
케 함이 아니라 롯의 선택에 따라 그 남은 땅을 자신이 차지하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 조카 롯이 먼
저 선택케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엇을 결정하거나 선택하게 될 때에 그 어른이 먼저 하는 것입니다. 그
러나 아브람은 그 원칙과원리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을 보게됩니다. 그는 자신의 선취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자시늬 권리를 포기하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이 땅에서 그리 쉽게 찾
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자신의 위치에서 오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시 조카가 먼
저 선택케 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모두 그렇지 않지만 거의 모든 삼촌들
이 그 조카의 재산을 빼앗거나 부당하게 그 조카의 재산을 사용하곤 하는데 아브람은 그 조카로 하여금 먼
저 땅을 선택케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부, 아브람은 목축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데 나쁜 땅  목축을 할 수 없는 땅을 차지하게 되면 큰일이 아닙니까? 그 소와 양들이 먹을 풀이 없
는 곳을 차지하게 된다면 얼마나 큰일입니까? 오늘날 그 무엇을 하든지 그 장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우
리 모두 깊이 인식하고 있지않습니까? 그 사업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비록 비영리단체라 하더라도 그 입지
장소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공과 실패가 그 장소에 달려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보
다 더 중요한 입지선정에 있어 그것을 그는 롯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롯이 왼쪽에 이는 땅을 차지하
면 근 오른 쪽 땅을 차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롯이 오른 쪽 땅을 선택하면 아므람은 욎쪽 땅을 차
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땅이 좋든 좋지 못하든간에 아브람은 그 남은 땅은 차지할 수 밖에없습니다. 아
브람은 이 말을 하면서 그 인생 곧 그의 성공과 실패를 그 조카에게 모두 맡긴 것과 같습니다. 이는 비단
땅의 선태이기 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의 모든 가축들의 모든 것을 롯에게 맡긴 것과 같
습니다. 아므람도 사람인데 그 어찌 모든 것을 실수가 많은 롯에게 맡기겠습니까? 아브람에게 믿는 그 어
떤 것이 없다면 그렇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얼마전 애굽에서 혹시 누가 자신의 목숨을
노릴 까 하여 자시느이 아내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기도 한 아브람이 그 어떤 믿음이 없고야 그 자신
을 포함한 모 것을 조카 롯에게 맡기겠습니까? 그는 여기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믿었
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큰 소리를 지를 땐 다른 무슨 믿
는 것이 있어서이지 않습니까? 물론 술취한 사람이나 허풍을 잘 치는 사람들의 큰 소리는 아닙니다. 보통
의 사람들은 그 무언가를 믿지 않고는 자시늬 권리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누구에게 맡기지 않습니
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볼 때, 아브람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
가 이 말을 할 때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다고 보아지고 이 말을 할 때,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
고 믿었던 것으로 보아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길으 ㄹ열어 주실 것을 믿지 않고서는 자기 조카
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이 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
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람은 그 선택을 하게끔 하면서 그가 그 다툼에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사람이 거주하고 있었고 또한 아브람과 롯의 사람들과 가축들이 너
무 많아서 땅이 좁은 이유이기는 하지만 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브람은 9절에서 ‘나를 떠나라’
영어로는 나에게서 분리되어라 곧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라
separate from me'입니다. 아브람은 롯이 자기에게서 분리되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말을 통하여 그는 롯
이 자신에게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깨달었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싸운는
것을 통하여 다른 이유를 발견하였던 거입니다. 아브람은 롯과 계속 함께 있는 한 다툼은 계속될 것을 알았
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툰 이유들 중 숨겨진 이유는 ‘그들이 함께 있다는 것’ 그것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
을 아브람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은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들이 함께 있기 때문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그 가나안을 보여주시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실 때, 복수 곧 아브람과 롯이 가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수로 ‘너는’ 곧 한사람 아브람
으로 하여금 가나안으로 가게끔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브람은 그 조카 롯꽈 함께길을 다녔
습니다. 아브람은 그 다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 것이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개인과 말
씀하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과는 달이 롯을 함께 데리고 다님으로 다퉁이 일었났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13-4
오늘은 창세기 13장 9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13장 9절부터 13
절까지에서,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
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 즉 소알 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
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겨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 들에 머무르며 그 장
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사람들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
다. 9절 말씀에서 아브람이 롯에게 떠나라고 우리성경에 번역되어 있지만 사실상 분리되어 떠날 것에 대하
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면 아브람이 자신의 조카 롯과의 연합을 한 가운데 떠날 것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그 연합을 파기하고 롯이 떠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제안을 받은 조카 롯은 10절
에서 한 행동은 자신의 눈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롯은 자신의 선택을 위하여 자신의 육안을 사용하였습니
다. 그 눈을 들어 요단 모든 들판을 보았습니다. 그 땅을 롯이 바라보자 그 땅이 물이 넉넉하게 보였습니
다. 이 롯은 평지를 생각하여 요단 평야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눈에 요단 들판은 물이 넉넉하게
보였습니다. 요단강이 흐르고, 그 옆에 위치한 평화엔 목초지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초
지가 그들의 목축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그 땅을 바라보면
서 두 개의 관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 요단 온 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그 땅을 하나님의 동산 같이 보았
고 애굽 땅과 같이 보았습니다. 롯은 요단 들이라는 한 장소를 다른 두 곳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였습니다.
롯이 한 장소를 두고 두 가지의 판이하게 다른 장소로 보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는 그 땅이 하나님
의 동산 곧 에덴동산같은 곳으로 보았고, 다른 하나는 그 땅이 애굽 땅과 같은 곳으로 보았습니다. 롯 그
는 두 가지를 겸하여 살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이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
며 살면서도 애굽이 가리키는 세상을 동경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마라면 롯은 두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그가 두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두가지의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하난데 두 마
음을 품는 곧 두가지의 생각을 했다는 것은 늘 갈등을 하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가지의다른 생각으
로 산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두명의 다른 여자와 함께 한집에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두명의 다
른 여자와 산다는 것 자체가 갈등이요 고통이요 그로 인하여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롯은 그 삶이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면서도 세상을 그리워하는 그러한 사람이었기에 그 요단 온 땅이 애굽땅과 같이 보이
기도 하고 하나님의 동산 같아 보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 땅이 하나님의 동산 같아 보이든가 아니면 애
굽 곧 세상의 좋은 땅과 보이든가, 그 중 하나로 보여야 함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로 보면 롯은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롯은 비둘기 같은 눈을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육체의 안목을 따라, 곧 그 육체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것 같은 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으로
자신이 거할 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하였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따
라 땅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선택치 아니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롯도 그가 눈으로 본 것을 인간의 생각대로 판단하여 그 땅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롯은 하와와 같이 자신
의 눈으로 보고 ‘먹기에 좋고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결정을 하는데 오래 걸리
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과 생각을 따른 일반적인 사람들의 선택의 기준을 좇은 것이었습니다. 그리
고는 그가 동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롯은 자신의 눈에 좋은 곳을 선택한 후로 동쪽으로 여행을
한 것입니다. 그는 사실상 살기에 편한 성들에서 머물렀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구비된 곳에서 살았다는 것
입니다. 롯은 육체의 편함을 추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도시에서 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성
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시에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 없는 생소한 곳에 그는 살게 되
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소돔성에 까지 그 지경을 넓혀 나가 소돔성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요단
온 들을 택하여 점점 더 동쪽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소돔에 까지 가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번에 소돔에
가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롯은 점차 곧 점진적으로 소돔으로 나아
갔던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소돔으로 향하여 갔던 것입니다. 소돔에는 그러면 어떠한 사람들이 살고 이
썼습니까? 예, 13절 말씀과 같이 소돔 사람들은 악하여 하나님앞에 큰 죄인이었습니다. 롯이 소동에 가서
천막을 치고 살았던 그 말씀과 소돔은 큰 죄인이어서라는 말씀을 잇는 접속사에 유리는 유의해 보아야만 합
니다. 우리 성경에는 그냥 소돔사람들이 악하고 하나님 앞에 큰 죄인으로 말씀하고 있지만 흠정역 성경에
는 13절을 말씀을 시작하면서 그러나(but)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합니다. 이는 롯이 향하여 가고 있었고 마침
내 소돔에 들어가 살게된 장소의 사람들의 상태는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상태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
니다. 그가 소돔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악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악하다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곧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롯은 하나님께서 기쁘
하시지 않는 곳으로 감으로, 그러나 그곳은 갈 곳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그 세
상속에서 사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잠시동안 편하고 쾌락을 누리게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세상
을 따라 그리고 육체를 따라 살고 있어 세상과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 사람의 눈에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p상과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 이상할 게 없고 오히려 세상과 육체를 따라 살
지 않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고 별스럽게 살아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과 육체를 따라 살아
가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기 보다 여러 가지 형태의 고난과 비방을 받기 일쑵니다. 그들의
눈에는 세상과 그 육체를 따라 살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의 이
상한 시선을싫어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과 육체를 따라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
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니까 그들을 사랑스럽게 보시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은 사랑하시나 그 원리까지 바꾼 것은 아닙니다. 그 죄인의 모든 것들을 사
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서 이루어 놓으신 그 구속의 사역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소돔성에 사는 사람들만 하나님 앞
에 큰 죄인입니까?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입니다. 사람들과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앞에 큰 죄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들 그런데 뭐 그게 큰 죄가 되느냐고요?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우심을 잊고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서우시다느것은 당신의 양심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당신
은 생활 속에서 왜 두려워 하십니까? 그것은 당신의 양심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양심은 하나
님의 심판에 대하여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롯처럼 소돔을 향하여 가서 소돔성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과 같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 소돔 사람들의 즐기는 것들을 즐기고 살 수 있습니다. 그것
이 자신에게 쾌락이 되어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13절 말씀과 같이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악하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롯과 같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 권리도 있습니다.그러나
그 사람들이 악하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남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그때 피힐
깋을 성량님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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